[월드컵스타]사막에 재앙 내린 ‘헤딩머신’

  • 입력 2002년 6월 2일 01시 45분


1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독일의 ‘떠오르는 저격수’ 미로슬라프 클로제(24)를 보면서 폴란드의 예지 엥겔 감독과 한국의 거스 히딩크 감독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마도 엥겔 감독은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히딩크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게 분명하다. 클로제가 이번 대회에서 폴란드 대표로 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클로제는 ‘순혈주의’를 표방하는 ‘전차군단’ 독일팀에서 ‘동유럽에서 온 이방인’이다. 1978년 폴란드 오폴레에서 태어나 아홉살 때 독일로 건너가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중 국적자’. 이 때문에 지난해 초 유럽에서 2002 월드컵 예선이 한창일 때 엥겔 감독과 루디 D러 독일 감독이 그를 잡기 위해 한바탕 ‘쟁탈전’을 벌여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날 그의 플레이만 봐도 양국 감독이 싸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클로제는 상대 문전을 유린하며 측면에서 날아오는 센터링 3개를 모두 시원한 헤딩슛으로 골문 안에 꽂아 넣어 독일의 대승을 주도했다. 수비수들 사이를 순간적으로 솟구쳐 올라 빠르게 날아오는 센터링에 머리를 정확하게 갖다대는 ‘킬러 본능’은 단연 일품이었다.

1m82, 74㎏의 탄탄한 체격을 지닌 클로제는 힘과 점프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골 결정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수비의 뒤를 순간적으로 파고들어 패스를 받는 감각이 탁월하다.

독일 프로축구 카이저 슬라우테른 소속인 클로제는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5경기에서 2골을 잡아냈다. 클로제는 올 2월14일엔 이스라엘과의 평가전에서 3골을 잡아내 7-1 승리를 견인하는 등 최근 사그라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던 ‘전차군단’에 희망을 던져줬다.

조국 폴란드를 외면하고 독일을 선택하며 “축구에 있어 나의 조국은 독일이다. 내가 독일을 위해 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고 말했던 클로제. 그는 ‘꿈의 구연’ 2002 월드컵 E조 예선 첫 경기에서 3골을 잡아내 이제 우승 외에 ‘또 다른 꿈’을 키울 수 있게 됐다.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 이후 득점왕이 6골 정도에서 결정되는 점을 감안할 때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3골을 잡아낸 그는 일약 유력한 득점왕 후보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