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쟁점토론]‘책값 할인 10%이내 제한’

  • 입력 2001년 12월 21일 18시 04분


《독자가 책을 정가대로 사는 도서정가제 문제가 출판계의 핫이슈로 다시 떠올랐다. ‘발행 1년 이내의 책에 대해 10%까지 할인 판매할 수 있도록 하되 할인 한도를 어기면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도서정가제 조항이 포함된 ‘출판 및 인쇄 진흥법안’이 최근 여야 의원들의 공동 발의로 국회 문화관광위에 제출, 계류돼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에 대해 인터넷서점과 서점상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 서점상 측은 “인터넷서점들의 지나친 할인 경쟁으로 인한 파괴적 책값 하락과 출판 및 출판판매업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이 조항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인터넷서점 측은 “할인폭 제한은 시장논리에 맞지 않고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조항 삭제를 관철하려 하고 있다. 》

▼찬성/출혈경쟁 막아 출판 활성화▼

책값을 할인하지 않는 도서정가 판매제는 20여년 동안 시행돼 오면서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출판국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만연된 인터넷서점 등의 무차별적인 가격할인 경쟁으로 출판계는 붕괴일로에 놓여 있다.

서점의 감소는 인터넷서점의 영향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 중소형 서점은 매출감소의 첫째 원인으로 인터넷서점을 꼽고 있다. 전국 서점의 95% 이상이 중소형 서점이며 이 서점들의 주 매출 분야는 학습참고서와 단행본 등이다. 중소형 서점에서는 정가제로 판매하고 인터넷서점에서는 10∼40% 할인 판매를 하고 있다. 이에 따른 매출감소는 곧 서점의 감소로 직결된다.

전국 서점수의 변화 추이를 보더라도 1997년 이전까지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그 후 50.1%가 감소했다. 특히 인터넷서점이 할인경쟁으로 극성을 부릴 때인 1999년과 2000년에는 무려 1200∼1500개의 서점이 사라졌다. 대형 유통할인점이나 초대형 서점은 국지적으로 해당 지역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인터넷서점은 전국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

인터넷서점 측에서는 ‘도서정가제는 소비자가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언뜻 들으면 타당한 듯하다. 그러나 어느 출판사이건 할인을 위해 정가를 인상한다는 것은 출판계에서 공공연한 상식이다. 3, 4월의 경우와 같이 가격 경쟁에 의해 할인이 격화되면 20∼30%에서 60∼70% 이상까지 출혈경쟁이 계속되며 출판사에서는 할인율을 맞추기 위해 가격을 인상하게 된다.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책에 대해서 정가판매가 좋은가, 할인판매가 좋은가 하는 문제는 단순하고 근시안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소비자에게 유익한가, 손해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인터넷서점은 할인을 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유통체계라고 한다. 그러나 문화선진국인 프랑스 독일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2개국에서도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11개국에서는 인터넷서점도 정가판매를 하고 있다. 이들 선진국에서 소비자의 권리를 박탈한다는 주장을 들어본 적이 없다.

또한 인터넷서점에서는 관리비 등을 절감해 그 절감액을 할인으로 소비자에게 돌려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서점은 물류비(배송)와 시설관리비 등이 추가로 소요되어 할인경쟁으로 적자를 본다는 사실은 도서유통업계에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도 할인경쟁을 계속하는 인터넷서점은 자선사업가라는 말인가.

혹자는 도서정가제를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해야지 법으로 강제한다는 것은 시장경제논리상 소비자들에게 설득력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자율적인 시행은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환경 하에서 출판문화의 붕괴만 초래할 뿐이다. 소비자를 보호하고 출판문화를 발전시키며 나아가 국가경제에 유익하다면 긍정적인 규제는 필요하다고 본다.

이창연(한국서점조합연합회 회장)

▼반대/시장논리-소비자 권리 침해▼

도서할인판매 제한은 동네서점과 출판사를 시장경쟁으로부터 보호하자는 데 주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서정가제는 출판산업을 시장경쟁으로부터 보호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우선 동네서점과 인터넷서점은 시장이 별로 겹치지 않는다. 동네서점에서는 중고교생 참고서와 잡지가 매출의 절반을 훨씬 넘는데 비해 인터넷서점에서는 이 책들이 별로 팔리지 않는다. 중고교생들은 적절한 인터넷 결제수단이 없어서 전자상거래를 별로 이용하지 않으며 잡지는 배송기간이 걸리는 인터넷서점의 단점 때문에 오프라인을 통해 즉시 구입한다.

인터넷서점에서 주로 판매되는 일반 단행본들은 동네서점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판매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통계를 봐도 동네서점의 급격한 퇴조는 인터넷서점 등장 몇 해 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동네서점의 퇴조 원인은 과거 동네서점의 고객들이 이제는 중·대형서점을 선호하는 데 있다. 예전에는 학교 앞 서점을 이용하던 중고교생들이 이제는 참고서 한 권을 사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시내 대형서점이나 지역 중형서점을 찾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할인판매를 제한해도 동네서점의 감소를 막을 수 없다. 대형서점의 신규개점을 금하는 말도 안 되는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이상 이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인터넷서점의 할인판매는 출판사에도 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책이 팔렸으며 오프라인서점과 달리 어음이 아니라 현금으로 결제해 출판사의 재무상태 개선에 기여했다. 싸게 파니까 싸게 달라고 출판사에 떼쓰지도 않았다. 인터넷서점의 할인판매는 각고의 노력으로 자체 유통비용을 절감한 결과다. 물론 저자에게 돌아갈 몫도 건드린 바 없다. 오히려 출판사와 저자에게 더 많은 몫을 더욱 투명한 결제방식으로 제공했다. 책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에게 제공한 혜택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음은 한 인터넷신문에 실린 도서정가제에 관한 독자의견이다.

‘인터넷서점이 생긴 후 책 구입량이 엄청나게 늘었다. 최소 5배 이상 될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인터넷서점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책을 소개하고 판매한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인터넷서점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도서정가제를 지킬 것인가, 인터넷서점을 지킬 것인가 양자택일하라면 나는 두말없이 인터넷서점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겠다.’

인터넷서점의 할인판매는 우리나라 출판산업의 총량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 파이의 이동보다는 파이의 확대에 기여했다. 이제 와서 도서할인판매를 제한한다면 출판산업의 총량이 즉각 감소할 것이다. 인터넷서점과 출판사에는 물론 손해가 될 일이고 서점들에도 특별히 득이 될 것이 없다. 대신 영화나 음반, 게임 같은 다른 문화산업이 빈자리를 메울 것이다. 책의 밝은 미래를 원한다면 모든 방면에서 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 우리 출판산업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보호가 아니라 더 많은 경쟁이다.

조유식(인터넷 서점 ‘알라딘’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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