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토탈 바스켓볼 = 토탈 트러블?

  • 입력 2001년 12월 3일 17시 30분


전주 KCC 이지스는 팀 명칭만큼이나 경기 스타일도 굉장히 흥미로운 팀이다. 이 팀의 감독인 신선우씨는 다른 KBL의 감독들과 달리 항상 독특한 전술을 선보여왔던 명 감독. 특히 프로 원년에 보여줬던 선수 로테이션 시스템이나 맥도웰과 이상민을 중심으로 한 픽 앤 롤 위주의 하프 코트 오펜스는 다른 KBL 감독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만큼 위력적인 전술들이었다. 그리고 지난 시즌부터 보여온 ‘토탈 바스켓볼’이란 전법도 꽤 재미있어 보인다.

사실 ‘토탈 바스켓볼’이란 말은 농구 사전 어디에 찾아봐도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농구부 기자들이 네덜란드 축구를 대표하던 ‘토탈 사커’란 말에서 착안해서 만든 신조어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 전법의 핵심은 뭘까? 전원 공격, 전원 수비? 하지만 공격수와 수비수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 농구에서 이런 확연한 구분이 가능하다고 보진 않는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선수 전원의 전 포지션화’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표현 같아 보인다. 실제로 KCC 이지스의 농구를 보게 되면 이런 일을 자주 볼 수 있다. 신장이 180cm에 불과한 이상민이 상대편 PG를 상대로 포스트 업 공격을 하고, PF 역할을 하는 정재근이 이상민이 피딩해준 볼을 받아서 3점 슛을 던지는 것들 말이다. 그럼 이 토탈 바스켓볼에는 어떠한 장점과 단점이 있을까?

장점이라면 역시 어떠한 상대팀과 붙더라도 미스 매치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농구, 그것도 개인 방어가 주가 되는 프로 농구에서 미스 매치를 만든다는 건 곧 승리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다는 말. 그 외 다른 장점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것보다 더 큰 장점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이 방법은 근본적으로 상대팀에서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이 전법을 막으려면 베스트 파이브 전원이 상대팀 공격수를 ‘개인기’나 전체적인 ‘기량’에서 모두 압도해야만 하는데,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진 모두 다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럼 단점을 지적해보자. 가장 큰 단점은 아무래도 경기력의 기복이 생길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이 토탈 바스켓볼은 1명의 플레이메이커(PG라는 말을 굳이 피한 이유는 이 역할의 선수가 굳이 가드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와 개인 능력이 뛰어난 3명의 포드 그리고 한 명의 빅 맨으로 구성되는데, 아무래도 모든 포지션의 선수들이 가드-센터-포드의 역할을 골고루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그것도 꾸준하게), 만일 특정한 선수 한 명의 컨디션, 특히 대체가 불가능한 플레이 메이커나 센터의 플레이가 부진할 경우 팀이 기초부터 흔들리기 쉽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이 있을 경우에 반대로 컨디션이 좋은 선수 위주로 그날 그날의 전술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점 또한 토탈 바스켓볼의 장점 중 하나이니 이걸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와 같이 좋은 전법을 가지고 있는 전주 KCC 이지스가 부진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우선 현재 ‘이지스’가 보여주는 농구는 신선우 감독이 원하는 토탈 바스켓볼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 전법은 선수 전원이 3점 슛을 던지고, 리바운드를 잡으며, 적극적으로 속공에 나서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재키 존스(JJ)야 말로 이런 농구에 가장 적합한 선수. 하지만 ‘불행’도 습관인지 JJ는 부상으로 나가 떨어졌고, 대체 외국인 선수로 영입해온 화이트는 그저 ‘정통 센터’로서의 면모 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3점슛이나 어시스트 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덕분에 KCC 이지스의 ‘최강의 공격 방법’인 상대적으로 신장에서 우세인 추승균이나 양희승의 포스트 업 후 외곽에서 3점 슛을 노리는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이 방법이 이지스에게 좋은 이유는 재키의 3점 슛으로 상대팀 센터를 유인해낸 후 정재근-양희승-이상민 등의 선수들이 리바운드에 가담해서 골 밑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재키의 부상과 함께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또 하나, KCC의 토탈 바스켓볼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공격에서는 선수 전원이 가담하는 토탈 바스켓볼일지 모르지만 수비에서는 너무 화이트에 의존하는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KCC 이지스가 기록하고 있는 경기 당 96.6실점은 전체 10개 팀 중 두번째로 많은 실점이다. 1위가 리그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세이커스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격력이 그렇게 좋지 못한 이지스의 96실점은 정말로 ‘밑지는 장사’라고 할 수 있다. 점수는 평균적으로 넣고, 실점은 과도하게 하니 경기에 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 현재 이지스에서 경기 당 10점 이상 넣고 있는 선수는 모두 6명이나 된다. 하지만 그렇게 ‘균등한’ 공격력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모두 추승균과 정재근 중 어느 쪽에 가깝게 균일하게 수비를 하고 있는지는 ‘숫자’가 증명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조만간 재키 존스가 돌아온다고 한다.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KCC 이지스는 좀 더 나은 ‘진짜’ 토탈 바스켓볼을 구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재키 존스는 선수로서 적은 나이가 아니며, 또 해마다 시즌 말미에 체력 문제 때문에 고전을 했던 선수. 만일 신선우 감독이 당장의 1승을 얻기 위해서 JJ를 경기 당 35분 이상씩 뛰게 한다면 ‘신선우식 토탈 바스켓볼’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고 말 거다. 이를 위해 구본근 등 팀내 장신 선수들을 좀 더 많이 기용해야 한다. 그리고 수비의 구멍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좀 더 많은 공격을 시도해서 수비에서의 열세를 만회하는 빠른 농구를 하든지(LG처럼), 아니면 좀 더 치열한 수비를 하든지 말이다. 지금처럼 많은 득점을 하지도 못하면서 손쉬운 골 찬스를 내주면 경기에선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개인적으로 KCC 이지스는 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팀 전체의 수비력을 올리기 위해선 결국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끌어 올려야 하는데 양희승-정재근 같은 선수들의 개인 수비력을 단시간 내에 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선수나름이겠지만...)

토탈 바스켓볼을 하려다 ‘토탈 트러블’에 빠진 KCC 이지스. 사실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농구는 앞으로 10여년간 한국 남자 농구가 세계를 상대로 들고 나설 무기이기도 하다. 인종적으로 210cm이상의 장신 선수가 나오기 힘든 우리나라에서 결국 세계 무대에 도전하기 위한 마지막 무기는 토탈 바스켓볼 밖에 없기 때문이다. KCC 이지스의 이런 실험적인 모험이 성공을 거둬 한국 남자 농구의 발전을 위한 한 모델이 됐으면 한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