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주니어 골프 교육, 이렇게 해 보세요

  • 입력 2001년 7월 13일 17시 46분


1998년 IMF의 고통에서 신음하던 우리들에게 예상치 못한 큰 기쁨을 주었던 박세리의 출현 이후, 우리나라에도 주니어 골프의 붐이 일고 있는 듯 합니다. 연습장마다 저녁 늦게나 주말이면 어김없이 어린이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오는 초등학생들이지요. 유치원생을 본 적도 있습니다. 짧은 어린이용 클럽을 앙증맞게 손에 들고 샷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귀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염려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린 자녀들을 연습장에 데리고 오는 부모님들은 대강 다음과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나이 들어 배우니까 아무래도 기량 향상엔 한계가 있어서 어릴 때 가르치기 위해서…”

“체중이 많이 나가서 운동 좀 시키려고…”

“빨리 애를 가르쳐서 가족들끼리 함께 라운드 할 날을 꿈꾸고 있다.”

“운동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서 아예 이 길로 내 보내려고…”

“요즘은 골프 잘 쳐도 대학 쉽게 간다고 해서…”

대체로 이런 이유들로 인해 아이들은 골프 클럽을 손에 쥐게 되죠.

그런데 골프를 어려서부터 가르치는 목적이 자녀가 성장하였을 때 그를 직업적인 선수로 키우기 위한 것이라면,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가르치는 골프 방법을 심사숙고 하여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니, 비단 선수로 키울 분이 아니라 할지라도, 다만 어릴 때 가르쳐서 나중에 골프를 잘 치게 만들고 싶으시다면 말입니다.

왜 이런 글을 쓰냐 하면 얼마 전 모 컨트리 클럽의 연습 그린에서 매우 재미있는 일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일요일 오후에 서울 근교의 한 컨트리 클럽에 갔었습니다. 연습 그린에서 퍼팅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지요. 오후 3시가 지나니 오후 팀 출발이 거의 마감된 시점이라 연습 그린이 한산해졌습니다. 퍼팅 스트로크를 하고 있는데 웬 꼬마 아이 두 명이 깔깔거리면서 왔습니다. 그 아이들 뒤로는 클럽의 프로 한 분과 아이들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분이 따라 옵니다. 아이들은 홀 주변에 볼을 놓더니 퍼팅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뜨엇!! 글쎄 이 녀석들의 숏 퍼팅이 장난이 아닙니다. 1.5미터 거리에서 치는데 10개를 치면 다 들어갑니다. 3미터 거리에서는 10개를 치면 9개가 들어갑니다. 아이들 두 명과 프로가 내기를 합니다. 꼴찌가 1등에게 음료수 한 캔을 뽑아다 주는 내기입니다.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면서 30분 정도를 그렇게 놀더니 이번에는 그린 엣지에서 15~20 미터 떨어진 홀을 향해 볼 붙이기를 내기합니다. 10개를 치면 8개가 홀컵 바로 앞에 붙어 버립니다. tap-in이 가능한 거리까지 말입니다. 저는 그들이 노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고 귀여워서 아예 퍼팅을 중단하고 그들을 쳐다 보았습니다. (실은 부끄러워서 더 못 치겠더군요. ㅠㅠ)

그린 엣지에 서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 보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보다 두 살이 많은 그분은 그 클럽의 회원은 아니고 근처에 사는 분이었는데 만혼으로 둔 아들 두 명(10살, 8살)에게 골프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미국에서 학교를 나와서 한국에 있는 어느 외국 회사의 부지사장을 하고 계시는 그분은 미국에서 대학 시절에 골프부에 있었으며 NCAA의 지역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PGA Tour 프로가 될 생각도 잠시 있었던 모양인데 완고한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공부에만 전념하였다고 하더군요.

그분이 제게 해 주신 말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자녀들을 주니어 골퍼로 만들고 장차 자녀들이 투어 프로가 되기를 바라는 모든 부모님들께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분의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골프를 잘 치려면 역시 조기 교육이 중요합니다. 조기교육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조기 교육이란 아이들이 어릴 때 무엇을 배우든지 그것으로 인한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즉, 조기 교육이란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군요… 조기 놀이라고 표현해야 할 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제 경험으로 볼 때 골프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나이에 골프채를 잡고 휘두른다는 것은, 마치 야구 배트를 들고 골목에서 야구를 하는 것과 같은 재미를 느껴야 한다는 것이죠. 어린 아이들이 싫증 내지 않고 골프를 배우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30년 가까이 생활했습니다. 미국 투어 프로들이 나이가 한 자릿수일 때 골프에 처음 입문하는 것에 비하면 저는 꽤 늦게 배웠지요. 그래도 14살 때부터였으니 당시 한국사람으로서는 무척 빨리 배운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증이 나더군요.

미국 어린이들이 골프채를 쥐게 되면 가르치는 사람은 처음에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제대로 된 코치라면… 혼자 그냥 채를 휘두르고 노는 것이죠. 그래야 창의력이 생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제약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샷을 날리는 창의력 말입니다.

한국에 귀국하여 아이들에게 골프를 가르치려고 연습장에 데리고 갔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안 갔습니다. 여기서는 아이들이 한두 번 가면 이미 골프에 싫증을 낼 수 밖에 없도록 가르치더군요. 10살 난 아이들에게 백스윙은 이렇게 하지 마라. 코킹을 해라, 말아라… 머리 들지 마라… 어른들도 이런 가르침에 싫증을 낼 판에 10살 아이들은 당연하겠지요…

그래서 전 애들을 그냥 데리고 나와야 했습니다. 대신 아이들 놀이방을 몽땅 비우고 인조 잔디를 깔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퍼터 하나씩만 마련해 주었습니다. 방에서 둘이 퍼터를 가지고 구멍에 집어 넣는 놀이를 2년째 시키고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어 합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자기들끼리 심심할 때 한번씩 하는 것 뿐입니다. 간혹 제가 저녁에 일찍 들어가는 날이면 저와 제 아내, 그리고 아이 둘, 이렇게 넷이서 따로 편을 먹고 내기를 합니다. 과자 사 내기, 아니면 심부름 하기, 그릇 치우기 등등…

아이들이 무척 재미있어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들간의 일체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이들은 전혀 싫증을 내지 않더군요. 1년째 되던 해 이곳 컨트리 클럽을 찾아 왔습니다. 여기 프로님께 말씀 드리고 나서 이제 거의 1년째 일요일 오후엔 아이 둘을 데리고 여기 연습 그린에 와서 놀다 갑니다. 물론 이제부터는 눈에 띄지 않게 프로님으로부터 아이들을 관찰하게 하고, 역시 눈에 띄지 않게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게 합니다. 절대로 “하지 말라” 라는 말은 안하고 말입니다.

2년동안 퍼팅 하나만 했는데 제가 보아도 얘들의 퍼팅 실력은 성인 싱글 수준입니다. 아직 퍼터 말고는 다른 클럽은 없습니다만 이제 드라이버를 하나씩 사 줄 생각입니다. 그걸 가지고 여기 와서 뻥뻥 지르게 할 생각입니다. 물론 방법은 퍼터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감을 충분히 느끼게 한 다음에 그리고 드라이버 역시 퍼팅만큼 재미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 후에 1-2년이 지나면 좀 더 체계적으로 가르쳐 줄 생각입니다.

어린애들에게는 재미(fun)가 최우선이 되어야만 나중에 걔들이 프로가 되건 싱글이 되건 잘 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을 프로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이 정말로 원한다면 적극 밀어줄 생각은 있습니다만, 골프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이 된다거나 아직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어린애들을 미리부터 주니어 골퍼 선수로 만들겠다는 한국 부모들의 발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선은 철저히 즐기게 하고 소질이 충분하며 본인의 의사가 있을 때만 보다 전문적으로 골프를 치게 해 주는 것이 진정으로 자식을 위하는 부모가 아닌가요?”

무작정 아이의 손을 끌고 와서 “언제 언제까지 이놈을 선수로 만들어 달라”고 말하실 부모님은 이제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식에게 골프를 가르칠 부모 치고 자신이 골프를 모르는 부모는 없을 터이고 그렇다면 골프의 속성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자녀에게 어떤 이유로든지 골프를 가르칠 생각이 있으신 부모님들께서는 제가 앞에서 예로 든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두고두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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