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 기자의 반집&한집]이세돌 탁월한 대세관에 감탄 또 감탄

  • 입력 2001년 7월 8일 18시 47분


2일 오후 2시 서울 한국기원 본선대국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대국이 막 시작될 시간이었다. 이날 대국은 제35기 왕위전 본선 최종국으로 대국자는 5승 1패인 조훈현 9단과 4승 2패인 이세돌 3단. 조 9단이 이기면 도전자가 되지만 이 3단이 이기면 둘다 5승 2패로 안영길 3단과 3자 동률이 된다.

그러나 대국이 한창 재개되야할 그 순간에 두 대국자가 주섬주섬 돌을 바둑통에 주워담는 것 아닌가.

어안이 벙벙해진 기자를 뒤로 한 채 한국기원 관계자가 두 기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5승 2패로 동률이 돼 도전자를 가리기 위한 대진표를 짜기 위한 추첨을 해야 한단다.

‘그럼, 이 3단이 이겼네’하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중요한 바둑이 왜 빨리 끝났지’하는 의문이 이어졌다. 20분 뒤 강훈 9단, 문용직 4단이 이 3단를 데리고 복기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초반에 흑이 망했나.”(강 9단)

“예, 조금….”(이 3단)

“조 9단이 속기로 둬서 바둑이 일찍 끝났구나.”(강 9단)

“예. 저도 빨리 뒀고….”(이 3단)

반면을 훑어보면 여기저기에 큰 자리가 널려있다. 상변에 침입하거나 하변을 차단하는 수 등 모두 좋은 곳.

하지만 이 3단의 선택은 장면도 백 1로 끊어 흑 두점을 잡는 것이었다. 얼핏 보면 2, 4로 활용당하고 다시 6, 8로 단수몰려 소탐대실처럼 보인다. 백이 두점은 잡았지만 바깥을 싸발리는 형태여서 흑의 사석 작전에 말려든 꼴이라는 것. 그러나 이 수가 이 국면에서 다른 ‘큰 곳’보다 우선 하는 ‘급한 곳’이었다. 이 수는 우선 두점을 잡은 실리가 짭짤할뿐만 아니라 백 ‘가’의 침입과 ‘나’의 끊음을 맛보고 있다. 그래서 루이나이웨이 9단은 흑 ○로 ‘다’의 곳에 두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흑 ○를 둘 때만 해도 조 9단은 변 쪽으로 한발 앞서나가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도 두점 끊어 잡는 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에….

바로 백 1과 같은 ‘급한 곳’을 둘 수 있는 혜안이 이 3단의 실력을 반증하는 것.

이 3단이 자리를 뜨고 다시 기보를 놔보던 문 4단은 백 1을 두드리며 “허허, 오늘 또 하나 배웠네…. 왜 이런게 우리 눈엔 보이지 않을까”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서정보 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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