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김미현/누가 내 '치즈'를 만들었을까

  • 입력 2001년 6월 5일 18시 36분


고급스러운 집에서 우아한 심은하가 ‘퐁듀’라는 치즈 요리를 하고 있다. 냉장고 광고지만 냉장고 자체가 아닌 ‘행복’이라는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당연히 이때의 행복은 대형 냉장고를 살 수 있는 부자에게만 허락된다. 그래서인지 행복은 ‘치즈’(‘김치’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웃고 있는 그녀의 표정 속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누가 내 치즈를 잘랐을까’ ‘치즈 내것 만들기’ 등 ‘변화’를 화두로 제시하는 책 3권에 등장하는 치즈 또한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대표한다.

▼남의 치즈 꼭 빼앗아야 하나▼

부와 명예, 사랑, 건강 등 평범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긍정적인 가치가 바로 이 책들에 나오는 치즈의 의미이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이런 치즈를 찾아 나선다.

작년에 소개되어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변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로 고민하는 21세기형 햄릿들에게 변하지 않으면 치즈를 잃어버린다고 강조한다. 치즈가 ‘부지런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것도 신속한 대처능력이나 발빠른 적응력 자체가 필수 불가결한 생존술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변화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비판적으로 패러디한 책이 바로 ‘누가 내 치즈를 잘랐을까’이다. 이 책에서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며 변화에 잘못 대처하면 오히려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런 변화에 저항하는 것은 이미 소용없으므로 차라리 맹목적으로 복종하라고 충고한다. 심지어 남이 치즈를 계속 잘라가므로 치즈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실패한 책임을 그에게 전가시키라고 알려준다.

또 다른 측면에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패러디한 ‘치즈 내것 만들기’는 더 지독하다. 아예 치즈 자체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겁주기 때문이다. 누구는 자동차가 있어서 치즈를 빨리 발견할 수 있다. 예쁜 몸이나 능력 있는 주변 사람, 부모의 후광을 가진 사람들도 치즈를 쉽게 찾는다. 무엇보다도 ‘돈은 모든 치즈를 능가한다’. 이런 ‘특혜’가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치즈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처럼 다른 사람의 치즈를 빼앗아야 하거나 불공평한 결과에 좌절할지라도 변화하지 않고서는 이 세상을 살 수 없다. 구석기시대나 무중력상태에 살지 않는다면 변화 여부가 아니라 그 이유나 정도, 방향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변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왜, 얼마만큼,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생산적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누가 내 치즈를 만들었을까’로. 그리고 내 치즈는 내가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앞의 책들은 변화를 인정하건, 하지 않건 치즈를 제로섬(zero-sum)게임의 산물로 본다. 누군가가 치즈를 얻으면 반드시 잃는 사람이 있다. 남이 만들어 놓은 기존의 치즈를 빼앗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치즈를 만들 수 있으면 치즈의 ‘파이’ 자체가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이때의 치즈는 플러스섬(plus-sum)게임의 산물이 된다. 총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변화를 강요하는 남 때문에 만드는 치즈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만드는 치즈는 다양하게 만들기가 더 쉽다.

그래서 정해진 규칙이나 편리함 때문에 미각을 일부러 획일화시킬 필요는 없다. 소품종으로 대량생산되는 치즈가 아니라 다품종으로 소량생산되는 치즈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맛을 내는 800여종의 치즈가 있다니까.

▼스스로 원해서 만들어야▼

영화 ‘러브 앤드 섹스’를 보면 “오래된 부부의 ‘사랑해’라는 말은 치즈 샌드위치와 같다” 는 말이 나온다. 치즈 샌드위치는 일상적인 음식이다. 그래서 익숙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가끔 먹는 퐁듀 요리보다 더 공도 많이 들이고 변화도 많이 주어야 한다. 옮기거나 잘라서 소유하기 위한 치즈가 아니라 직접 만들어서 먹기 위한 치즈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그리고 변화가 반복되면 일상이 되지만, 일상이 변화하면 예술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미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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