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차병직/‘카지노 의혹’ 정말 단서없나

  • 입력 2001년 3월 13일 18시 35분


약 2000년 전, 참배객들이 몰려드는 그리스의 어느 사원에 새로운 기계가 하나 설치되었다. 동전을 넣으면 그 무게에 의해 꼭지가 열리면서 정화수가 흘러나왔다. 이것이 확인된 최초의 자동판매기다. 동전 대신 오렌지 껍질 같은 잡동사니만 밀어넣지 않으면 24시간 묵묵히 일하는 이 기계는 지금도 꽤 인기있고 유용한 외판원으로 우리 곁에 있다.

자동판매기를 모방해 만든 것이 슬롯머신이다. 20세기가 시작된 즈음, 어떤 영리한 인간은 기계로 하여금 평범함 사람들의 도박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기게 한 것이다. 나는 가끔 농담삼아 현금자동지급기를 그렇게 부르곤 하는데, 슬롯머신이야말로 현금자동판매기인 셈이다. 슬롯머신이 이웃의 아무에게나 도박의 기회를 제공하자 지각있는 한 비판자는 이렇게 외쳤다. “수많은 형태의 도박장치가 등장해 사람들의 돈지갑을 털며 번영을 누리고 있다.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상당한 정도의 법적 개입과 지침이 필요하다.”

▼짜맞춘듯한 허가과정▼

슬롯머신은 카지노의 기능과 실내장식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비품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의 삶과는 무관한 듯 보였던 카지노가 갑자기 화제가 되었다.

국제회의장과 특급 호텔이 즐비한 서울의 강남 한복판에 호화 카지노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주변은 주말이면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카지노가 생소한 존재는 아니지만 카지노의 규모와 예상되는 시설보다 더 흥미를 끄는 것은 허가도 받지 않고 공사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알고 보니 시공회사는 금융기관에서 1000억원 이상의 대출을 받아 부근의 다른 건물에 호텔을 지었다. 그리고 그 중 수백억원으로 국제회의장 부속 건물 일부에 카지노를 꾸미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공사의 주체는 이미 카지노장 개설 허가를 사실상 확신하고 있는 셈이다.

이 사실에서 핵심으로 등장하는 의혹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부의 이해하기 힘든 정책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허가를 전제로 한 로비와 자금의 거래관계다.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마지막으로 카지노 허가를 한 이후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30만명 더 늘면 2개 이내의 범위에서 신규허가를 내줄 수 있다. 워커힐 카지노는 1968년에 시작했고 제주도에도 있지만 그 요건은 쉽게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카지노는 특급 호텔에 허가할 수 있도록 돼 있으나 1998년 말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에 따라 국제회의업 시설(컨벤션센터)에까지 범위를 확장하게 됐다. 이 사건에 비추어 보면 마치 미리 계획하고 법을 개정했다는 의심까지 들게 한다.

당시 국회 속기록에 남겨진 문화관광부 장관의 법개정 취지는 국가전략산업으로 관광산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조성이란다. 구체적으로는 무엇보다 수익성이 높은 카지노 사업을 통해 외화를 획득하고 외국인 투자까지 유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작용은 내국인 출입을 철저히 막음으로써 예방하겠다는 포부도 덧붙여져 있다.

하지만 카지노가 외화를 벌어들여 우리 경제에 도움을 주고 고용을 증진시켜 생활에 보탬이 될까, 아니면 자물쇠 없는 시민의 지갑을 털어 버리게 될까. 최근 보도되고 있는 강원도 폐광촌 카지노 사정만 보더라도 짐작은 된다. 게다가 1억달러 이상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카지노 허가를 하자는 보류된 법안이 통과되는 날에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내국인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는 헌법소원을 통해 결과적으로 외화유출을 초래하고 말 것이라는 걱정스러운 의견도 있다.

▼검찰 이번엔 진실 밝혀야▼

이렇게 문제가 많은 카지노가 서울 도심에 생긴다는 것은 환경적 자존심과도 관련된다. 일본에는 카지노가 없고 홍콩에도 도심에는 없다. 그럼에도 공사가 진행된 배경에는 또 검은 돈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검찰이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정말 단서가 부족할까.

카지노는 오락을 위장한 도박이다. 도박을 범죄로 할 것이냐는 물론 정책의 문제다. 그러나 도박의 중독성은 마약과 같고 범죄행위로 규정하면서도 정부의 승낙에 따라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모순은 국가보안법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정부의 정책도 따지고 싶고 경위의 진실도 알고 싶다.

차병직(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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