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송호근/누굴위해 의약분업 했나

  • 입력 2001년 2월 6일 18시 43분


의약분업 실시 반년을 점검하는 언론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의약분업의 명분을 무색하게 할 만큼 부작용이 웃자랐기 때문인데 그것을 일부 의사와 약사의 민첩한 행동과 국민의 인식부족 탓으로 돌려야 할지, 정부의 대처능력 부족을 탓해야 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아마 두 가지 다일 것이다. 최근의 보도를 보면, 항생제와 주사제 처방률이 의약분업 이전보다 오히려 높아졌고 약제비도 큰 폭으로 올라, 안 그래도 적자에 허덕이는 의보 재정을 크게 위협한다는 것이다. 행위자들의 상호조율 때문에 분업 초기에는 약제비의 상승이 불가피하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하락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지만 의약계의 담합행위나 제약회사와 의료기관의 블랙 커넥션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약의 오남용과 재정적자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어서 우려를 더한다. 혹시 초기의 이런 부작용이 더욱 번성해서 의약분업의 긍정적 효과를 상쇄해 버리면 어찌할 것인가?

▼得본 이 없고 부작용만 속출▼

정부가 강조한 대로 의약분업은 약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필연적인 제도다. 그러나 의료대란까지 치르고 시행된 의약분업에서 득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집단은 의사다. 의사들은 직업적 정체성을 송두리째 잃었으며 환자 앞에서 전문가 행세를 하기 어렵게 됐다. 공익을 저버리고 이윤만 좇는다는 사회적 비난이 마음 깊숙이 상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약속과는 반대로 국민은 의료비를 더 부담하게 됐다.

의약분업과 관련해 의보수가를 20% 이상 인상해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던 의보재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일반약 낱알판매 금지로 환자들이 같은 약을 의약분업 전보다 2배 이상 비싸게 사는 불편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초기 설계는 상황에 따라 원칙 없이 흔들렸다. 약제비 절감이 의료비 인하 요인이 된다는 이론적 계산은 착오였으며 대체조제 처방전발행 약품분류 환자들의 비합리적 요구 등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의사파업에 혼쭐난 정권은 이제 서비스 개선도 없는 의료비 인상에 항의하는 국민과 대적해야 할 판이다. 개혁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의로운 개혁’으로 득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의약분업전은 ‘패자들의 전쟁’이었다.

사후 조치에 고심하던 정부는 최근 두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약의 과잉처방과 고가약 처방을 계도하고 의사와 약사의 담합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것, 보험재정의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소액진료비의 본인부담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 7만명, 약사 7만명 해서 줄잡아 14만명의 의료행위와 400개 제약회사의 판매전략을 감시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아마 의료비 인상분에 버금갈 것이므로 효과가 없다.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정부는 세무조사라는 고답적인 방법에 호소하려 들 것이다.

소액진료비의 본인부담제는 궁여지책이다. 종합병원 외래진료에 제한적으로 적용해 ‘중복 진료’의 기회 비용을 높인다는 것이 취지이지만 저소득층을 의료서비스로부터 배제할 뿐만 아니라 개인부담의 총체적 인상 요인이 된다. 정부는 이래저래 ‘예상치 않은 결과’에 골머리를 앓게 됐다.

그러나 냉철하게 생각하면 그것은 예상됐던 결과다. 도덕적 명분으로 무장한 ‘분업동맹’이 마구 휘둘러댔던 ‘정의의 칼’에 뎅겅뎅겅 잘려나간 ‘선 보완, 후 시행론’은 적어도 이런 부작용에 대한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는데도 업적지향적 판결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의료현실 뿌리부터 개혁해야▼

봉합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닌 터에 정부는 이제 와서 후속 조치를 마련하면 잘될 것이라고 강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의약분업의 효과는 그것의 뿌리인 의료현실에 대한 본질적 개혁과 함께 살아나기 때문이다.

의약분업 이후 환자와 수입의 증가는 오히려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와 의료현실의 악화를 가져왔으며 비리의 여지도 제거되지 않았다. 의료대란의 대가로 국민과 의사들이 원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행위별 수가제의 재고, 동네의원과 종합병원간 분업, 중복 진료 억제를 통한 환자의 감소, 의료비의 적정 조정, 의료전달체계의 전면 재조정, 의료 인력의 배양 등 산적한 현안을 함께 풀어야 비로소 의약분업의 부작용이 해소될 것이다.

송호근(서울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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