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원빈, 반라를 드러내다

  • 입력 2001년 2월 2일 18시 29분


뱀띠 청년 원빈이 진짜 뱀과 만났다. 광고에선 거의 등장하지 않는 뱀. 그의 미끈한 몸을 소리없이 드나드는 푸른 뱀과의 조우는 엽기적이지만 독특한 멋스러움이 묻어난다.

심플한 블랙 소파에 눈 감고 누워있는 원빈. 흑백 컷으로 깜빡 속을 만큼 블랙톤과 메탈소재로 꾸민 간결한 방이다. 살짝 풀어헤친 하얀 셔츠 틈으로 언뜻 보이는 맨살이 시선을 끈다.

그저 셔츠 단추를 풀고 아무렇지 않게 누워있지만 화면 가득 은근한 관능으로 일렁인다. 오른 팔을 위로 올리고 왼 팔은 배 위에 얹은 구도는 왠지 고독한 이미지. 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온 그만의 비밀스러운 의식처럼 느껴진다.

뉴에이지 풍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음악은 시간이 멈춘 듯한 그의 공간을 깨운다. 한 음절씩 높게 뽑아내는 목소리는 신비로운 울림과 청아한 느낌. 드디어 원빈이 푸른빛의 넥타이를 풀자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지는데...

스르륵~ 원빈의 넥타이가 푸른 뱀으로 바뀐 것이다. 블랙과 화이트의 공간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푸른 뱀은 섬뜩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게다가 섬세한 무늬를 가진 매끈한 청사는 무섭다기보단 신기하다는 느낌이 먼저다.

상체를 다 벗은 반라의 몸. 그 위를 미끄러지듯 푸른 뱀이 지나간다. '남자는 쉬고 싶다' 낮은 목소리로 여자가 읊조리고 원빈의 애절한 표정이 클로즈업 된다.

단순하지만 색의 조합이 세련되다. 블랙, 화이트, 블루. 검은 소파는 화려하지 않은 편안한 휴식, 흰 셔츠는 그의 인텔리전트하고 유능한 사회 이미지, 블루 스네이크는 신비한 환상을 드러내는 은유 같다. 거기다 프러스 알파되는 원빈의 몸빛은 더없이 섹시하다.

이 광고는 색다른 이미지가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은밀한 파장이 포인트다. 차갑고 섬뜩한 이미지의 뱀과 젊은 남자의 뜨거운 반라가 접촉하는 그 지점. 촉각을 곤두서게 만드는 절묘한 신. 한류와 난류가 만나듯 극도의 차가움과 뜨거움이 한데 엉겨붙어 생성하는 기묘한 분위기가 매혹적이다.

원빈에겐 분명 남다른 매력이 있다. 저절로 폼이 묻어나는 외모도 한몫 하지만 외딴 섬에서 혼자 자라난 야생아처럼 자유분방하고 원시적인 느낌이다. 게다가 사랑 앞에선 그 무엇도 다 내어줄 것 같은 뜨거운 이미지. 마치 <가을동화>에서의 태석처럼.

신사년(辛巳年)을 맞아 원빈의 파트너가 된 뱀. 두렵고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광고 소재로는 드물지만 뱀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다르다. 허물을 벗는 특성 때문에 불사와 재생을 상징하고 다산성은 재물과 다복을 나타내기도 한다. 무덤의 수호신이나 땅의 신으로 인식된 것도 그런 이유다.

뱀띠인 원빈의 목을 휘감은 청사. 어쩌면 그의 연기변신을 도와주는 수호동물일지도 모른다. 휴식을 취할 때 함께 하고는 스윽 사라지는. 신사년, 묵은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뱀의 이미지처럼 늘 새롭게 변신하는 원빈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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