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기자의 반집&한집]다 끝난 바둑 대역전 승자도 패자도 묵묵…

  • 입력 2000년 11월 28일 19시 09분


◆농심 신라면배 최강전 : 흑 목진석-백 샤오웨이강

오후 6시경 검토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검토를 주도하던 조훈현 9단이 “좌하변 흑대마의 생사가 걸린 패싸움에서 흑의 팻감이 부족해 승부가 끝났다”고 말한 뒤 차민수 4단과 함께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27일 제2회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의 6번째 대국인 목진석 5단과 샤오웨이강 9단의 대국이 열린 서울 동작구 농심 본사.

승부가 이미 끝났다는 권위있는 판정이 내려지자 검토실은 파장 분위기가 됐다. 흑을 든 목5단이 이길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 기사들의 아쉬움은 더 큰 눈치였다.

“목5단이 아까 우변 대마 싸움에서 끝냈어야 했는데….”

“글쎄 말야, 중앙으로 한 칸 뛰었으면 한 수 빠르게 백 대마를 잡을 수 있었다는데 왜 엉뚱한 곳에 뒀지.”

“초읽기에 몰려서 그렇겠지. 우변 백대마를 잡았지만 좌변 흑대마가 죽어서는 상황 끝이야.”

[장면도]

우변 백대마가 잡혔지만 좌변 흑 ○가 모두 백의 수중에 들어가 백의 필승지세. 흑 1은 ○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 이 때 백 2가 실착. 이 수로 ‘가’로 두었으면 흑이 살길이 없었다. 흑이 2로 따내면 ‘나’로 물러서서 그만.

“그래도 백의 실착 때문에 좌변 흑대마가 패로 버틸 수 있게 됐는데 팻감이 부족해. 하늘이 안 도와주는 걸.”

목 5단이 팻감을 한 개라도 더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샤오 9단은 다 된 밥에 재뿌릴까 싶어 조심조심하며 여유있게 팻감을 쓰고 있었다. 이제 몇 수만 더 두면 백의 승리가 확정된다 싶었다.

그러나 승부의 신은 최후의 반전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컴퓨터처럼 정확한 수순을 밟아나가던 샤오 9단의 손길이 초읽기 탓인지 갑자기 멈칫하더니 엉뚱한 자충수를 둔 것. 검토실의 최철한 3단이 “이게 뭐야…이건 또다시 역전인데”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착각을 깨달은 샤오 9단이 돌을 던졌다.

검토실에 있던 기사들이 우르르 대국장으로 몰려갔다.

목 5단과 샤오 9단은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다. 목 5단이 중국어에 능통해 서로 말도 잘 통하건만 두 대국자는 정지 화면처럼 그대로 굳어있었다. 진 자의 충격도 컸고, 이긴 자도 후유증이 심했던 탓일까. 피말리는 1분 초읽기로 2시간 넘게 바둑을 두었던 극도의 긴장감, 엉뚱한 수로 입었던 마음의 상처가 그들의 말문을 닫았을 것이다.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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