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쟁점토론]비정규직 국민연금 가입 유보

  • 입력 2000년 11월 17일 18시 32분


《정부 규제개혁위원회가 내년 1월부터 5인 이상 사업장의 모든 근로자를 국민연금에 가입시키고 2002년 7월부터는 이를 1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하려던 방침을 유보한 데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이에 찬성하는 측은 경제여건 악화로 가뜩이나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업주들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 등 반대측은 열악한 삶의 질로 고통받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저버린 것으로 유보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찬성-중기부담 늘면 되레 고용 줄수도▼

최근 정부가 소위 비정규직 근로자의 국민연금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을 직장가입자로 전환하려는 방침을 보류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는 오랜만에 중요 정책에 대한 정부 내 크로스체크 기능이 올바로 작동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심각한 경기침체와 실업사태를 맞아야 했으며 또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신중하지 못한 정책결정과 성급한 입법으로 오히려 사회비용과 국민적 부담만 늘린 경우도 많이 있었다.

국민연금의 적용 범위 확대 문제만 하더라도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국민연금은 크게 직장 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구분되며, 지역가입자는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는데 비해 직장 가입자는 보험료의 절반을 사업주가 지원해 주고 있다.

따라서 직장의 범위를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한다는 것은 현재 지역가입자인 5인 미만 근로자를 직장 가입자로 변경함으로써 5인 미만 사업주들의 보험료 부담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의 어려운 경제여건 때문에 영세기업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으며 대다수의 5인 미만 사업장 사업주들이 매우 영세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 영세기업의 부담을 늘린다는 것은 적절치 않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임시직과 일용직 근로자의 국민연금 적용 문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임시직과 일용직 근로자 역시 이미 국민연금에 지역가입자로 편입돼 있기 때문에 이들이 직장 가입자가 된다는 것은 제도적으로 사업주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시직과 일용직의 70%가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이고 5인 미만 사업장의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임시직과 일용직 근로자에게 직장 가입자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사회적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또 중소기업 부담을 증가시킴으로써 오히려 이들의 일자리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소위 비정규직 보호 요구는 통계청의 임시직과 일용직 통계가 50%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계약기간을 기준으로 한 임시직과 일용직 통계의 부적절성과 과대추정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임시직과 일용직 통계를 소위 비정규직과 동일시하는 것은 큰 정책적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지적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정책이 마련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실체 파악도 안된 상황에서 신중한 검토 없이 정책을 마련한다면 그 피해는 국민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비전문가들이 마련한 임시방편적 대책과 성급한 정부정책들이 얼마나 큰 후유증과 국민부담을 초래했는지 충분히 깨달을 때도 됐다고 생각한다.

김영배(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

▼반대-경제 어려울수록 사회보장 절실▼

최근 정부 규제개혁위원회는 임시직과 일용직 노동자도 내년 1월부터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가입범위를 확대키로 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보류시키고 국민연금 가입대상을 2002년 7월부터 전면 확대하기로 했던 계획을 무기한 연기시켰다.

정부의 이같은 정책 변화는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삶의 질과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저버리는 것이다. 이번 국민연금 확대 유보 방침을 철회하고 비정규 노동자에게도 직장 국민연금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 등과 함께 가장 기초적인 사회보장제도이다. 고용과 소득이 낮고 불안정한 취약 계층을 위한 최후의 사회적 안전망인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정작 사회적 보호가 절실하게 필요한 계층에 대한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의 적용이 배제되어 있다.

현재 직장 국민연금은 5인 이상 사업장의 3개월 이상 고용된 노동자들만 가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비정규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직장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정부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 노동자의 80% 이상이 직장 국민연금의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다. 국민연금제도의 취지에 비춰 볼 때 이들 비정규 노동자에게 국민연금을 전면 적용하는 것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경기침체와 더불어 기업 퇴출과 인력 감축 중심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다시 실업자가 늘어나는 한편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과 소득도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춰 볼 때 이번에 보류된 ‘국민연금 부분 적용 확대’라는 정부 방침도 사실 매우 미흡한 것이다. 당장 전면 적용해도 뒤늦은 상황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가 사회보험의 전면 적용도 아닌, 국민연금의 부분적 적용이라는 기존의 방침마저 철회해버린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이번에 보류된 이 방침은 8월 김대중(金大中)정부 국정 2기 경제운용 방침에서 제시되었고, 10월 4일 주요 경제장관들이 참석한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도 재차 확인된 것이다. 정부 스스로 불과 한 달 전에 시행을 공언했던 방침을 뒤집은 것으로 정책의 일관성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규제개혁위원회에서는 이번 유보 방침을 결정하면서 경제위기와 기업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울수록 그 고통을 가장 많이 받게 될 비정규 노동자 등 사회의 빈곤층을 위한 정책은 강화돼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번 유보 방침을 철회해야 할 뿐만 아니라 비정규 노동자에게 국민연금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 나아가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다른 사회보험도 전면 적용해야 할 것이다.비정규 노동자를 포함한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적 보장은 정부를 비롯한 전체 사회의 책임이다.

김태현(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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