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의 메디컬&로]'라이증후군'에 진정제만…

  • 입력 2000년 8월 15일 18시 43분


열흘 전부터 감기증상을 보이던 다희(1세·여)가 ‘장이 꼬인 것 같으니 큰 병원에 가라’는 동네 의사의 권유를 받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간 것은 새벽 2시경.

레지던트 2년차 당직의사는 진찰 뒤 ‘단순한 감기’라며 퇴원을 권했다. 다희 엄마는 만일을 대비해 “그럼, 감기가 회복될 때까지 응급실에 있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했다.

의사는 진정제를 투여한 뒤 아이가 잠이 들자 당직실로 올라갔다. 1시간 후 입원할 때 정상이던 다희의 체온이 38.6도로 올라가고 오한이 났다. 맥박수 140회(평균 100회), 호흡수 52회(평균 28회)로 뛰었다.

간호사가 당직의사에게 3차례나 전화했으나 의사는 “옷을 벗기라”고 지시하고 내려와 보지도 않았다. 오전 9시 다희의 얼굴이 갑자기 시퍼렇게 변하더니 숨소리가 멈췄다. 급히 의사를 불러 심장마사지를 했으나 다희는 깨어나지 못했다.

부검결과는 ‘라이증후군’. 감기 회복기에 뇌압이 상승하면서 간기능이 갑자기 나빠지는 소아질병으로 혈당 혈청 암모니아검사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법원은 아무런 검사도 하지 않고 진통제만 투여한 잘못을 들어 의사에게 8,000만원을 물어주라고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3일동안 밤낮을 두고 한숨도 자지 못해서….”

법정을 나오면서 담당의사는 다희 엄마에게 머리를 숙였다.

딸을 잃은 다희 엄마는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아야 합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의료대란으로 응급실 당직의사들이 며칠씩 밤을 새고 있는 요즘 다희같은 아이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신현호(의료전문변호사)www.med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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