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미스터]21세기는 '레고형 인간'의 시대

입력 2000-02-13 19:34수정 2009-09-23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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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블록이 최근 바비인형, 액션맨, 곰인형 테디베어를 제치고 영국장난감업체협회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장난감’으로 선정됐다. 미국 콜로라도대 등 9개 대학은 올해부터 소수민족계 학생에 대해 필기시험 대신 레고블록으로 로봇을 조립하는 능력을 테스트하겠다고 밝혔다.

레고가 21세기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문명과 인간을 통찰력있게 바라보는 ‘창(窓)’으로 떠오른 것이다.

▼레고와 문명▼

‘잘 “노는(Play Well)’이란 뜻의 덴마크어인 레고(LEGO). 다양한 조각들을 자유자재로 짜맞추는 방식의 이 장난감은 1932년 공장 설립 이래 세계적으로 약 3억명의 어린이가 갖고 논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선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아래서도 40%의 매출 신장을 기록.

레고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자크 아탈리는 ‘레고 문명(Civil Lego)’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서로 다른 레고조각들을 모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듯 서로 다른 철학과 이데올로기 문화 정치체제 예술 종교를 구미에 맞게 ‘조립’해 독특한 라이프스타일과 정체성을 만든다.

21세기에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국경이 무너지면서 “레고문명권 사람들은 개방적 성격 때문에 끔찍한 불안함도 안락하다고 받아들인다”고 아탈리는 말했다.

▼왜 레고인가?▼

‘목표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일단 쌓아간다는 것’이 레고의 메카니즘. 첫 블록을 어디에 어떻게 쌓느냐에 따라 다음 블록의 위치도 달라진다. 순간적 필요와 기호에 따라 전체 모양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변화해 나가는 것.

레고조각의 크기와 모양은 제각각이다. 단 레고브랜드가 아니더라도 서로 맞춰 끼우는 요철(凹凸)부분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모두 같다. 저마다 색깔과 모양이 다른 스타일과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스스로의 삶을 조립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레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수백개의 레고블록으로 로켓이 만들어졌을 때, ‘최종 결과물’인 로켓은 각각의 레고블록 4조각을 물리적으로 합한 것 이상의 그 무엇이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훨씬 큰 무한대가 된다.

▼레고적 인간은 누구?▼

정치적으로는 무정부주의를 신봉하고 에코 페미니즘을 추구하면서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테크노뮤직을 동시에 즐기는, 동서양 요리가 혼합된 퓨전음식을 좋아하면서 때로는 ‘친구의 친구를 사랑하는’ 맞춤 개성파 삶이 등장한다.

최근 TV광고에 스타크래프트 세계챔피언으로 등장한 소년이 그 연약해 보이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한 비행기들을 향해 용맹하게 주먹을 치켜올리는 장면도 사이버세계에서는 결코 이율배반적이지 않다.

이는 N세대(네트워크 세대)의 정체성 문제와도 연결된다.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이지만 그 ‘조각’들로 정체성을 규정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교수의 지적.

황교수는 “‘어느 것이 진짜 이 사람의 모습이냐’고 밝히려는 것은 레고 한조각으로 전체모양을 밝히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레고문명 사회에서는 언제나 하나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보다 정체성의 폭이 넓은 사람이 각광받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이승재기자>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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