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키드/獨유치원]장난감 없애니 상상력「쑥쑥」

입력 1999-07-19 19:40수정 2009-09-23 22:35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3월2일. 독일 베를린의 분데스알레 킨더타게스슈태테(종일제 유치원)의 학습프로그램 중 하나인 ‘장난감 없는 유치원’ 첫날.

슈테판(6)등 30명의 원생이 양손에 레고와 장난감기차 등을 들고 창고로 향했다. 색종이 가위 크레파스 동화책도 자료실로 옮겼다.세발자전거도 치웠다. ‘이사’에 걸린 시간은 30분. 유치원에는 의자와 걸상만 남았다.

★무(無)에서 유(有)를

갑자기 ‘놀거리’가 없어진 아이들은 당황했다. 1시간 뒤. ‘칙칙 폭폭 칙칙 폭폭….’의자를 일렬로 배치한 율리앙(6)은 기차소리를 냈다. 쉴러(5)는 손으로 의자로 십자를 만든 뒤 비행기가 날아가는 시늉을 했다. 의자로 갖가지 모형놀이를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좀더 흐르자 세면도구를 갖고 노는 아이가 생기고 실내화로 자동차 놀이를 하는 아이도 나타났다. 어린 아이들은 형과 누나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따라했다. 큰 아이는 ‘의자 비행기’ 앞에 앉아 조종사가 되면 작은 아이들은 뒤에 손님으로 앉았다.

3일 둘째날. 전날과 비슷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침 식사 시간이 40분 늘었다는 것.

“어제 우리집 고양이가 새끼를 3마리 낳았다.”(노이만·5)

“예쁘겠다.”(아만다·6·여)“뭐가 예뻐. 밤마다 이상한 소리로 울어.”(헬러·5·여)

아이들간 대화가 늘어났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 얘기를 늘어놨다. 또 “이거 해도 돼요?”라고 묻는 대신 “비행기 날개는 몇개나 돼요?”“배에도 브레이크가 있나요?” 등 ‘정보성 질문’을 던졌다.

셋째날(4일) 이후.언어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의자로만 집을 만들더니 천을 이용하면 더 멋있는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원생들은 형제자매처럼 지내게 됐다. 정원의 나무 꽃 곤충 벌레 등을 ‘생활의 파트너’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3개월 동안 지루해 하거나 불안해하는 아이는 없었다.

“아들이 명랑해졌고 자기 얘기도 많이 해요. 누나와도 함께 잘 놀아요.”처음에는 애를 바보로 만드는 게 아닌가하고 걱정했다는 슈테판의 엄마 안게리카(33)의 설명.

마지막 날(6월2일). “이제 놀이감을 예전처럼 방에 갔다 놓으면 어떻까?”(교사 퀸·26). “괜찮아요. 필요하면 가져와 놀 거에요.”(아이들)

장난감에 종속됐던 아이들이 해방된 것이다. 이날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장난감 말과 소 등을 동원해 ‘상상속의 마을’을 만들었다. 유치원은 이같은 진행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해 놓고 있다.

‘장난감 없는 유치원’은 92년 바이에른주 펜츠부르크시 유치원에서 처음 실시됐다. 타지역으로 파급돼 베를린에서만 50여 유치원이 이 프로그램을 매년 한차례 실시하고 있다.

자유베를린대 유아교육학과 프라이싱(47)교수는 “어른이 TV나 알코올에 중독되는 것처럼 아이들도 놀이감이 없으면 무기력해진다”면서 “교사 교구 교재 중심에서 벗어나 잠재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독일 유아교육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감정 기상도

유치원과 방과후 교육을 병행하는 베를리너슈트라세 호르트. 헤센주 마인탈시에 있으며 연극교육으로 유명하다.

6월22일 오후 연극시간. 소극장으로 들어가자마자 마누엘(6)은 칠판 앞으로 가 파란 ‘자석 바둑알’을 ‘기쁨’에서 ‘슬픔’으로 옮겼다. 슈테펜(5)과 크리스티안(6)은 어제에 이어 그대로 ‘기쁨’. 1시간 뒤 연극 ‘헨델과 그레텔’ 연습이 끝나자 마누엘은 바둑알을 ‘기쁨’으로 옮겼다. 크리스티안의 알은 반대로 ‘슬픔’행. 연습 중 마누엘은 칭찬받았고 크리스티안은 대사를 자주 잊어버렸기 때문.

감정을 기쁨 슬픔 우울 분노로 나눠 연극시간 전후에 표시하도록 한 ‘감정기상도’.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법을 터득한다는 게 원장 엘케 마르(40)의 설명.

★예상과 실제

같은 날 마인탈시 아이헨도르프슈트라쎄 유치원의 ‘오늘의 프로젝트’ 중 ‘감각판 길’. 교사 크라프트(54)는 상자 9개를 땅에 묻고 아이들이 전날 숲에서 채집한 것들로 채웠다. 상자와 상자 사이에는 흙이 깔렸다. 상자간 거리는 30∼70㎝. 10여명의 아이들이 줄을 지어 상자 속 내용물을 밟으며 이동했다. 맨발로.

‘나뭇가지→잔디→솔방울→전나무껍질→건초→코르크마개→자갈→유리판→물’.

“어떤 느낌일까?”아이들이 내용물을 밟기 직전 받는 질문이다. 발에 닿기 전에 먼저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상자에 들어가면 또다시 질문을 받는다. “실제 느낌은?”

‘딱딱해’‘부드러워’‘차가워’. 교사가 예상하지 못했던 표현도 나왔다.‘물렁물렁하다’‘까칠까칠하다’‘병아리 털 같다’

크라프트는 “설레임과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례를 기다리면서 질서의식을 기를 수 있고 이동하면서 무게중심을 잡는 동안 균형감각을 익힐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이번 취재에 서울교육대학 유아교육과 곽노의교수가 동행,도움말을 주셨습니다)

▼市예산 12% 유아교육 배정▼

헤센주 마인탈시의 98년 예산은 6백20억원(1억마르크). 유아교육 부문에 73억918만원(약 11.8%)를 배정한다. 시는 이 중 17억7506만원을 자체 수입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55억3400만원(75.7%)은 연방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마인탈시의 유치원생은 892명.

독일 유치원의 월 학비는 부모의 소득에 따라 6만∼34만원으로 다르다. 연방정부는 공립사립(공립 25%)을 막론하고 원생당 월 13만6000원을 시에 대한 지원과 별도로 학부모에게 지급한다. 부자는 지원금 보다 학비를 더내야 하고 가난한 사람은 ‘남는다’.

▼원생대표-시장 면담학습법 독특▼

6월 초 독일 헤센주 마인탈시(市)의 시장실.바시티안(6)은 키만한 지휘봉을 들고 준비해온 자료를 가리켰다.

“사진에서 보듯 철봉과 그네가 너무 낡았어요. 페인트칠도 많이 벗겨졌고. 또 바닥에 깔린 모래의 양이 너무 적어 넘어지면 다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베를리너슈트라세 유치원 대표인 그는 한달동안 원생들과 파악한 동네 놀이터의 문제점을 또박또박 지적했다. 이웃 놀이터와 비교한 표도 제시했다.

“한달 안에 고치겠습니다.”(로드 바흐시장·43) 바시티안은 한달 뒤 동네 놀이터를 다시 찾았다. 약속이 지켜졌는지 확인하고 사진을 찍었다. 다음날 이 내용을 유치원 복도에 전시했다.

마인탈시는 매달 한번씩 ‘어린이 위원회’를 연다. 참석자는 각 유치원 어린이 대표 5∼10명과 시장. 대표들은 각각 불만이나 희망사항을 얘기한다. 시장은 △유치원교사 △초등학교교사 △학부모 △교육행정가 △일반시민 △사설학원협회 회원으로 구성된 자문단과 함께 해결책을 찾는다.

〈베를린·마인탈〓이호갑기자〉gdt@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