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칼럼]아버지와 아들

  • 입력 1997년 5월 16일 20시 24분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는 불행한 사태가 현실로 나타났다.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구속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죄가 있다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직도 도덕이 우선하는 우리 사회에서 최고 권력자의 아들이 구속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그것도 파렴치로 낙인 찍혔으니 나라와 가문(家門)의 창피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은 4년3개월전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외쳤다. 그러나 그때의 그 자신에 찬 취임사도 둘째 아들 賢哲(현철)씨의 사법처리로 빈말이 되고 말았다. 자식의 허물, 아비의 불찰을 아무리 탓하며 회한에 잠겨본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 용서받지 못할 거짓말 ▼ 세상에 뜻대로 안되는 것이 자식이라고들 하지만 대통령을 아버지로 둔 아들이라면 여느 집안의 자식과는 달라야 한다. 늘 죄인처럼 몸을 낮추고 죽은듯 엎드려 있어도 잡음과 구설수가 따라다니는 것이 대통령의 아들이다. 무엇보다 세도따라 벌떼처럼 몰려드는 아부꾼과 정상배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 사정을 몰랐거나 알았어도 무시한채 함부로 처신한 데서 오늘의 치욕적인 비극이 싹텄다. 대통령인 아버지가 칼국수를 먹을 때 아들은 호화 룸살롱을 드나들었다. 개혁사정(司正)이 한창일 때 이권에 개입해서 거액의 「활동비」를 챙겼고 아버지의 가장 큰 업적중의 하나인 실명제를 비웃듯 검은 돈의 세탁까지 했다. 이런 혐의들이 사실이라면 그는 정말 용서받기 어려운 아들이다.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국정을 어지럽힌 죄가 크다. 더 나쁜 것은 그러고도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였다는 점이다. 하다못해 청문회 석상에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반만이라도 털어놓고 죽을 죄를 지었으니 이 길로 검찰에 가서 벌을 받겠소 했다면 아버지를 지금같은 궁지로 몰아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문회 때의 눈물과 국민대표들 앞에서 한 증언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국민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한 집안의 패가망신(敗家亡身)은 물론 92년 대선자금문제까지 불거져 아버지인 대통령마저 엄청난 의혹과 불신의 대상으로 부각시켜 놓았다. 민심은 흔들릴대로 흔들리고 국정은 끝없이 표류하는 가운데 정권은 뇌사상태 직전이다.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기는 대통령은 고사하고 오히려 오점을 남기게되었다. 임기까지그 자리에 있을지 없을지 그것조차 불투명한 위기에 몰렸다. 이 모든 것이 현철씨만의 잘못일까. 아들의 무분별한 행동을 아버지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 말이 안된다. 또 알고도 묵인하고 방치했다면 이건 더 큰 문제다. 김대통령은 자신을 빼닮은 현철씨를 편애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아꼈다고 한다. 아들이지만 정치적 동지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그런 아들의 사조직과 조언에 힘입은 바 컸고 당선 후에는 정권의 배후실세로 국정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물의를 빚기 시작했다. 결국 이 모두는 사려깊지 못한 부자(父子)가 엮어낸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 대선주자들 거울 삼아야 ▼ 서구(西歐)의 가치관으로 보면 아버지와 아들은 별개의 독립된 인격체다. 아들의 잘못을 아버지가 책임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동양적 윤리관은 부자유친(父子有親)이다. 자식의 허물이 곧 아비의 허물인 것이다. 아버지의 권력을 빙자한 아들을 바로 엄계(嚴戒)하지 못한 김대통령으로서는 엄청난 자괴(自愧)와 도의적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재벌이든 대통령이든 자식이 경거망동하면 기업이 망하고 나라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꿈을 가진 사람들은 이번 일을 큰 거울로 삼아야 한다. 남중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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