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영화&쫄깃한 수다]‘즐거운 인생’

  • 입력 2007년 9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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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현실’ 확 뒤엎고 난 뒤엔…

영화 ‘즐거운 인생’의 시사회 날, 이준익 감독은 말했다. “즐겁자고 사는 인생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안 즐거워?” 그 말을 듣고 본 영화, 40대 아저씨 3명은 힘겨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 보겠다고 아내들에게 갖은 구박을 당하면서 대학 시절 하던 밴드를 재결성한다. 그리고 신나게 논다.

마지막 콘서트 장면까지는 즐거웠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 즐거움은 싹 사라지고 걱정이 시작됐다. ‘저 사람들, 이젠 어떡하지?’

좋다. 꿈을 찾아 즐겁게 사는 것. 그러나 꿈을 이뤘어도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아내들은 콘서트 장면에서 모든 걸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그들이 함께 차린 조개구이집이 대박이 나지 않는 이상, 백수인 기영(정진영)의 아내는 열심히 돈 벌어야 하고 기영은 눈치 보며 살아야 한다. 아이들 공부를 인생 최대 목표로 여기는 성욱(김윤석) 아내의 인생관이 갑자기 바뀔 리 만무하며 기러기 아빠 혁수(김상호)의 아내는 그 없이도 잘 먹고 잘살 것 같다. 무대 밖 인생은 여전히 꿀꿀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 거 누가 모르나? 늦은 나이에 꿈을 찾거나 혹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세계일주라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그러지 못하는 건 적당히 비겁하기 때문이고, 가족에게 피해 주기가 싫어서다. 또는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서다.

이건 영화다. 이후의 상황까지 상상하며 기분을 망칠 필요는 없지만 현실에 이 이야기가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즐겁게 사는 방법을 연구하는 김정운 명지대 여가경영학과 교수에게 물어봤다. 그는 즐거움의 기준은 ‘지각된 자유(perceived freedom)’, 즉 ‘어떤 행동을 자신이 선택했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많아져 ‘내가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될 때 즐겁다.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라도 그 안에 선택의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는 느낌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영화와 같은 극적인 선택에는 또 다른 구속이 따른다. 김 교수는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는 없음을 인정하고 현실 안에서 사소한 재미를 느끼는 ‘마니아적인 삶’을 추구하라”고 했다. ‘나만의 재미’의 주체가 되라는 말.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는 커피를 직접 갈아 마시고 문구점 쇼핑을 하는 데서도 재미를 찾으며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을 넓혀 간다. 이준익 감독도 인터뷰에선 “현실을 엎으라기보단 바꾸어 나가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의 전복’은 대다수에겐 그 자체가 꿈이다. 그저 일상을 개선해 가는 것, ‘확 때려치우는 건 겁나는’ 우리에겐 최선의 길이다.

오늘도 팍팍한 하루였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누우며 TV를 켜다가 멈칫….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집을 나서는 쪽을 ‘선택’한다. 즐겁게 살고 싶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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