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고독이 몸부림칠 때’ 웃음속에 저며오는 고독

  • 입력 2004년 3월 9일 18시 44분


코멘트
시골마을에 사는 장년의 고독을 유머와 페이소스로 담아낸 ‘고독이 몸부림칠 때’. 이 영화에 공동주연으로 출연한 중견배우 7명의 평균 나이는 57세다. 사진제공 마술피리
시골마을에 사는 장년의 고독을 유머와 페이소스로 담아낸 ‘고독이 몸부림칠 때’. 이 영화에 공동주연으로 출연한 중견배우 7명의 평균 나이는 57세다. 사진제공 마술피리
주 현(63), 김무생(61), 양택조(65), 송재호(65), 선우용녀(59), 박영규(51), 진희경(36)이 공동 주연한 ‘고독이 몸부림칠 때’란 제목의 영화에서 당신은 무엇을 기대하는가. 영화는 더도 덜도 말고 그 기대만큼의 연기와 이야기를 보여준다. ‘엽기적’이진 않다. 이 영화의 미덕은 역설적이게도 제목을 극복했다는 점. 장년의 고독을 유머와 페이소스로 담아내면서도 억지웃음을 짜내려 ‘몸부림치지’ 않는다.

경남 남해군 물건리. 알을 잘 낳지 않는 타조 때문에 고독한 타조농장 주인 중달(주현)은 반공정신으로 고독을 이겨내는 진봉(김무생)과 원수지간. 찬경(양택조)과 필국(송재호)은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느라 바쁘다. 중달은 노총각인 동생 중범(박영규)을 결혼시키려 안간힘을 쓴다. 횟집 주인 순아(진희경)도 중범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웬일인지 중범은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한다. 서울에서 “저기 요오”하고 섹시한 콧소리를 쓰는 송여사(선우용녀)가 내려오고, 남자들은 밤마다 고독에 몸부림친다. 중범이 결혼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밝혀진다.

이 영화는 7명의 인물 개개인에 균등하게 카메라를 배분해 웃음 생산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분산시키는 ‘포트폴리오’ 전략을 쓴다. 그래서 관객들의 지루함을 덜어주면서 영화를 ‘종합선물세트’처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이 TV드라마 같은 영화는 애당초 클라이맥스를 향해 극적 긴장의 끈을 조여 가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코미디의 단골소재인 동성애와 속옷 도착증도 어김없이 등장하지만 인물 캐릭터와 상황, 에피소드가 자연스럽게 맞물려 들어가는 편. 카메라는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7명의 삶 구석구석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한군데에 빈틈을 만들면서 그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미스터리를 만든다.

평균 연령 57세인 주연급 캐스팅보다 더 흥미로운 뒷얘기도 있다. 우선 백전노장 배우들을 이끌고 ‘몸부림친’ 사람은 이 영화로 데뷔하는 ‘초짜’ 이수인 감독(42)이라는 점. 다음은 이 소박한(?) 영화의 관람 등급이 ‘15세 이상’이라는 점이다. 제작사는 이 영화가 가족영화처럼 비쳐질 것을 우려해 아예 영화등급위에 ‘15세 이상’으로 등급분류를 신청했다는 후문. 19일 개봉.

물건리 남자들이 고독을 느낄 때
인물상황
중달
(주현)
-타조가 알을 잘 낳지 않을 때
-죽은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함께 가자”고 할 때
중범
(박영규)
-형 중달이 결혼하라고 다그칠 때
진봉
(김무생)
-‘박정희 각하’를 중달이 ‘박정희’라 부를 때
찬경
(양택조)
-어머니 제사일이 되었는데 어머니 이름이 생각 안날 때
-1년 공부해도 스쿠터(이륜원동기) 면허 필기시험에 떨어질 때
필국
(송재호)
-손녀가 “할배, 냄새 난다”고 할 때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