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빅 피쉬'…아버지의 꿈, 허황돼도 아름다웠지

  • 입력 2004년 2월 24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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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머니의 집 앞에 수선화 1만 송이를 심고 프러포즈했다. ‘빅 피쉬’에는 허무맹랑하지만 아름다운 아버지의 모험담이 펼쳐진다. 사진제공 이노기획
아버지는 어머니의 집 앞에 수선화 1만 송이를 심고 프러포즈했다. ‘빅 피쉬’에는 허무맹랑하지만 아름다운 아버지의 모험담이 펼쳐진다. 사진제공 이노기획
‘크다’는 게 뭔가. 욕망의 대상이자 열등감의 원천 아닌가.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Big Fish)’는 그러나 큰 것의 위대함보다는 큰 것을 꿈꾸는 행위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대니얼 월래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더 크고 위대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빅(Big) 콤플렉스’를 따뜻하게 뒤집어 봄으로써 무용담으로 얼룩진 과대망상 인생이 갖는 아름다움을 역설적으로 펼쳐낸다.

통신사 기자인 윌리엄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고향을 찾는다. 평생 허무맹랑한 무용담을 되풀이해온 아버지는 변한 게 없다. 영화는 아버지가 늘어놓는 장광설을 따라 과거로 간다. 윌리엄의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 그는 엄마 뱃속에서 튀어나오자마자 병원을 헤집고 다녔고,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으며, 정의감에 불타는 소방수이자 만능스포츠맨, 그리고 발명왕이었다. 더 큰 세상에서 성장하는 ‘빅 피쉬’가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난 블룸은 거인, 인어, 샴쌍둥이, 늑대인간 등을 만나며 모험과 로맨스를 경험한다…. 아버지의 모험담 속에 등장하는 물건을 창고에서 실제 발견하게 된 윌리엄은 아버지 말 속의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기 위한 추적에 나선다.

이들 부자(父子)의 관계는 분명 뒤바뀐 것이다. 아버지는 판타지 속에 묻혀 살고, 아들은 차가운 리얼리티의 세계에서 아버지를 재단한다. 하지만 허구의 세계와 현실 세계는 ‘이야기’라는 키워드를 통해 화해의 접점을 찾는다. 죽음에 임박한 아버지의 귓전에 대고 아버지의 멋진 최후를 꾸며서 이야기하는 아들의 모습에는 ‘빅 피쉬’가 되고자 했던 아버지의 동심이 아름답게 투사돼 있다.

청년 에드워드 블룸을 맡은 이완 맥그리거는 그간의 메트로섹슈얼 이미지를 버렸다. 촌스런 억양에 허무한 판타지를 좇는 샐러리맨의 모습을 자처했다. 노인 에드워드 블룸 역의 앨버트 피니와 아내 역의 제시카 랭, 괴짜 시인으로 등장하는 스티브 부세미,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서커스단장 데니 드 비토 등도 탁월한 ‘이야기꾼들’이다.

‘허구와 현실의 화해’라는 화두는 팀 버튼 감독 자신의 고민이기도 한 것 같다. ‘비틀주스’ ‘가위 손’에서 보듯 그는 원래 전위적이고 차가운 스타일에서 휴머니즘을 역설적으로 끄집어내는 감독이었다. ‘빅 피쉬’에서 팀 버튼은 판타지와 감동을 저울질하며 최적의 혼합비율을 계산한다. 그는 기괴한 캐릭터들이 즐비한 미스터리 형식의 긴박한 이야기들을,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산문시처럼 아련하게 다듬었다.

팀 버튼 감독은 성숙해진 걸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버린 걸까. 분명한 건 팀 버튼 자신도 에드워드 블룸처럼 아버지가 됐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아들 윌리엄은 “아버지는 산타클로스에 지나지 않는다. 매력적이지만 가짜일 뿐”이라며 비난한다. 그러나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이나 팀 버튼이나 다를 게 무언가. ‘거짓’이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멈출 수 없는 허풍쟁이들 아닌가. ‘큰 물고기들’ 아닌가.

다음달 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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