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컬처플러스][음악]대중가요에 비친 마흔살의 회한과삶

  • 입력 2002년 3월 24일 18시 15분


나이에 어울리는 값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찍이 공자님은 열다섯 살부터 일흔 살까지 나이에 어울리는 삶의 자세를 제시한 바 있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서른세 살이 되었을 때, 예수가 그 나이에 보여준 언행들 앞에서 일 년 내내 주눅이 들었답니다.

장정일은 소설 ‘아담이 눈 뜰 때’에서 열아홉 살에는 타자기(문학)와 뭉크 화집(미술)과 턴테이블(음악)을 가지고 싶었다고 했지요. 한 마디로 예술을 원했던 겁니다. ‘서른 즈음에’는 때 이른 김광석의 죽음과 맞물려 멀어지는 젊음에의 아쉬움을 듬뿍 담아냅니다.

소위 386(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라고 불리던 이들 중 80년대 초반 학번들이 어느새 마흔 살에 닿았습니다. 불혹에 접어든 그들은 486(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으로의 업그레이드에 성공했을까요. 386과 486은 얼마나 같고 다른가요.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을 듣습니다. 그녀도 역시 열아홉 살의 설레는 두려움과 서른 살의 빛나는 청춘을 떠올리는군요. 우린 정말 사랑의 대상이 떠난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아는 걸까요.

90년대 안치환의 분투는 눈부셨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나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처럼 날카롭고 힘찬 노래는 물론이거니와 ‘소금인형’이나 ‘내가 만일’과 같은 따뜻한 사랑노래도 썩 잘 어울렸지요. 저는 그 자연스러움이 지독한 방황과 뼈저린 고뇌의 산물임을 압니다.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면서도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까지 포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노스탤지어 앨범의 서정성과 김남주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의 전투성. 오직 안치환만이 그 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고 믿었지요.

작년에 발표된 안치환의 7집은 의외였습니다. 특히 으뜸 노래 ‘위하여’는 숨가쁘게 달리던 기차가 간이역으로 천천히 들어서며 토하는 기적(汽笛)과도 같았지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다’는 깨달음에는 자기 연민이 흘러넘칩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내놓은 7집의 으뜸곡 ‘브라보 마이 라이프’도 비슷한 느낌을 전합니다. 그리 좋진 않지만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었던 지난 날을 뒤로 하고 내가 가는 곳이 길이라며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지요.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반복합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나이를 응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걸음걸이에 회의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월의 깊은 상처와 잦은 실패가 반복될까 두려운 것이지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혼자 된다는 것이며, 특히 40대 가장의 어깨에 지워지는 삶의 무게는 등이 휠 것처럼 힘겨운 법이지요. 이젠 철부지처럼 무지개를 쫓을 시기도 아니고 처음부터 다시 무엇인가를 시작할 나이도 지난 겁니다. 계속 가되 일상의 권태에 빠지지 않는 법, 하루하루 보람을 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잠깐 동안의 휴식도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잔을 높이 들고 우리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브라보를 외친다고 해서, 10년 동안 드러난 386의 오류와 한계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MBC 주말연속극 ‘여우와 솜사탕’에서 증권투자로 ‘억’을 날린 봉강철의 허풍과 과시욕은 386의 약점을 아프게 찌릅니다. 분명 우리에게도 단번에 삶을 뒤바꾸고 싶은 한탕주의에의 욕심, 내 아내와 자식들만을 생각하는 가족이기주의의 편협함이 있습니다. 젊은 날의 열망이 무너지는 것은 높은 이상 때문이 아니라 단단한 일상 때문이라고 했던가요. 어떻게 하면 이 권태로운 일상의 벽을 부수고 열아홉 살의 열망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386이 486을 거쳐 586으로 업그레이드되는 풍광을 만나고 싶습니다. 나이값을 해야겠지요. 주점에서 잠시 만나 높이 들었던 술잔을 내리고 이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자기에의 배려를 넘어 자신을 속박하는 세상을 넉넉하게 품어야겠지요. 고통과 상처가 뒤따를 수도 있겠지만 쉰 살 쯤에 다시 그 시절을 더듬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인생을 반추하기에는 마흔 살의 태양이 너무 뜨거우니까요.

김탁환 소설가·건양대 교수 tagtag@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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