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장선희]‘바비 인형’과 ‘빅토리아 시크릿’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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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희 문화부 기자
장선희 문화부 기자
“냉면에 가위질? 그건 죄예요, 죄.” “물 2000cc는 못 마셔도 맥주는 마시잖아요? 먹고자 하는 의지의 차이예요.”

개그맨 김준현, 유민상, 문세윤, 김민경…. ‘빅사이즈 개그맨’ 4인방의 ‘먹방’(먹는 모습을 촬영한 방송)을 즐겨본다. 재밌는 점은 이들이 남보다 큰 몸집에 별다른 콤플렉스가 없어 보인다는 거다. “넷이서 청국장 11인분, 공기밥 19공기를 먹었다”고 당당하게 자랑하고 자신들의 ‘뚱뚱함’에 대한 세상의 야박한 시선을 개그 소재로 삼는다. 심지어 식사량이 적은 사람들에게 ‘의지가 없다’며 되레 타박도 한다. 한 여자 연예인의 “먹어봤자 내가 아는 그 맛”이라는 전설적인 다이어트 명언에 대해서는 “어처구니가 없다”고 반박하거나, 사람들의 시도 때도 없는 체중 감량 타령에 “살면서 다이어트 방법은 하나도 안 궁금했다”고 비꼬며 웃음을 자아낸다.

지난달, 바비 인형을 만드는 미국 완구업체 ‘마텔’사의 새로운 시도가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검은 히잡을 쓴 바비를 내놓은 것. 1945년 설립된 이래 어린아이들에게 여성 몸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며 비판받아온 마텔사가 그 나름의 변화를 시도 중이다. 히잡 바비 이전에도 비현실적인 8등신 몸매가 아닌 비교적 통통한 팔다리를 가진 ‘커브(curve) 바비’, 키가 작은 ‘프티트(petite) 바비’, 그리고 키가 큰 ‘톨(tall) 바비’까지 기존과 다른 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이런 행보를 두고 외신들은 ‘매출이 줄어든 마텔의 고군분투’라는 냉정한 평을 덧붙였지만 긍정적인 변화임에는 틀림없다.

비현실적인 ‘바비 인형 몸매’에 반감을 표하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는 모양이다. 마텔의 발표와 비슷한 시기, 중국 상하이의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 홀에선 미국 유명 란제리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가 열렸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깡마른 8등신 금발 여성들이 모델로 서는, 화려하고 다분히 ‘미국적인’ 콘셉트를 추구해 온 이 브랜드가 미국과 유럽 대륙이 아닌 곳에서 패션쇼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시 미국에서 매출이 점차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 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공교롭게도 바비 인형 같은 몸매를 내세웠던 두 업체가 매출 하락에 시달리며 고군분투 하는 것은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자기 몸 긍정주의 운동’(Body Positivity Movement·세상의 기준에 맞춰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자는 운동)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비단 속옷뿐이 아니다. 자기 몸 긍정주의는 하다못해 남의 시선을 의식해 겨드랑이 털 제모까지 할 필요는 없다며, 세상의 모든 강압적인 미의 기준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움직임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미국의 또 다른 속옷 브랜드인 ‘에어리’는 과감하게 포토샵 보정 기술을 버리고 빼빼 마른 모델 대신 통통한 모델을 내세운 뒤로 ‘현실감 있다’는 평을 들으며 매출이 오르기도 했다.

‘뚱뚱한 게 죄’처럼 여겨지는 세상, 개그맨 4인방의 당당한 먹방을 보고 있노라면 묘한 쾌감과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불과 한 달 뒤면 또다시 스트레스를 받으며 새해 몸매 관리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적잖을 것이다. 무리한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려는 이들에게 먹방 개그맨 4인방 중 김준현의 멘트를 소개한다. “절 보고 모든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포기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면 됐지, 맛있는 음식을 뭐 하러 참나요?(웃음)”
 
장선희 문화부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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