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닉 리포트]판막 삽입술이 대세… ‘시술할수록 병원 적자’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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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수 서울대병원 심혈관센터 교수
김효수 서울대병원 심혈관센터 교수
얼마 전 대동맥판막 협착증을 앓고 있는 82세 할아버지가 병원을 찾았다. 평소 등산이 취미인 할아버지였지만 질환이 서서히 악화되면서 숨이 차 등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조차 힘들어졌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수술을 받기에는 체력이 너무 약한 상황이었다.

과거에는 이런 때 약물요법 외에는 별 대책이 없었다. 하지만 약물요법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최근에는 가장 획기적인 시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이 도입돼 수술을 하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해졌다. 이 할아버지는 이 시술을 받은 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평소 즐기던 등산도 가능할 정도로 호전됐다.

수술 없이 시술로 심장에 새로운 판막을 심어주는 시대가 왔다. 이미 소화기 호흡기 부인과 질환에서는 복강경이나 내시경을 통한 시술이 상당수 시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생명과 직결된 심혈관계 질환 치료 분야에서 새로운 치료법인 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이 도입된 것이 가장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술은 초기에 수술이 적합하지 않은 고령의 환자나 체력이 약한 노약자에게 수술 대용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시술 뒤 경과가 매우 좋아 현재는 유럽과 북미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시술 대상을 확대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벌써 10만 명의 환자가 이 시술을 통해 건강한 삶을 되찾았다.

국내에도 이 시술은 2년 전 도입돼 현재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 2년간 24명의 노인 환자들에게 이 시술로 새로운 판막을 심어줬다. 숨이 차서 식사도 어려웠던 96세의 환자, 숨이 차서 밤에 제대로 누워 잘 수 없던 85세 환자, 좋아하던 등산을 하기 어려웠던 82세 환자가 식사를 여유 있게 할 수 있고 편히 잘 수 있으며 매일 등산을 즐길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에도 어려움은 있다. 현재 시행되는 치료술 중에서 최고의 난도를 요구하기에 단 한 명의 환자를 위해 심혈관계 내과, 외과, 마취과 교수 등 10명의 의사와 간호사, 의료기사 등 15명의 매머드급 드림팀이 시술에 참여한다.

이 때문에 병원으로서는 적자를 무릅쓰고 시술을 하고 있다. 현재의 저수가 의료 환경 속에서는 많은 인적자원과 의료 장비가 투입되는 이 시술을 시행하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은 형편이다. 환자들이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으려면 의료 기술의 발전에 더해 병원이 정상 운영될 수 있는 적절한 의료 환경에 대한 사회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 투자는 의료 혜택을 받는 국민과 그 정부 몫이다.

의료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피부 절개 없이 내장기관을 꺼내고 넣는 환상적인 장면을 이제는 첨단치료팀이 구현하고 있다. 그동안의 의학 발전이 ‘양적인 측면’에서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켰다면 이제는 ‘질적인 측면’에서도 통증과 흉터 없이 편하고 안전하게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김효수 서울대병원 심혈관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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