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X파일]‘자연의 콩팥’ 습지탐사

  • 입력 2006년 12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8연패의 늪에 빠지다’ ‘부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인터넷 검색창에 습지를 일컫는 단어인 ‘늪’을 입력했을 때 뜨는 말이다. 신문기사에도 ‘수렁에 빠져드는 과거사 청산’ 같은 부정적인 표현이 자주 눈에 띈다.

그뿐인가. ‘수렁에서 건진 내 딸’ ‘늪지의 괴물’ 같은 영화 제목조차 습지를 암울한 곳으로 묘사한다. 영어 ‘quagmire(수렁)’나 ‘bog down(수렁에 빠지다)’도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건 마찬가지다.

이런 어두운 이미지 때문인지 오랫동안 습지는 버려진 땅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습지의 환경적인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최우선으로 보전해야 할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인식되고 있다.

새만금사업과 천성산 터널공사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습지는 항상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12년 전 습지를 공부하러 영국으로 떠날 때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파격적인 변화들이다. 그새 ‘습지보전법’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정부 각 기관이 앞 다퉈 보전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습지는 오염물을 깨끗이 걸러 주는 ‘자연의 콩팥’,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물 백화점’으로 불린다. 하지만 정작 그런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미생물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습지에 사는 이들 미생물의 기능을 연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강화도 갯벌이나 한강 하구 등 전국 방방곡곡의 습지를 돌아다니며 시료를 채취해야 하는 것은 기본.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습지를 돌아다니는 일은 ‘걸어 들어왔다가 기어 나간다’고 표현할 정도로 고된 과정이다.

물론 덕분에 공짜로 머드팩을 해 볼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말이다.

현장에서 가져온 토양은 어찌 보면 그저 진흙 덩어리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연구팀에는 매우 소중한 실험재료다. 그 안에 사는 미생물은 지구온난화, 토양 오염, 수질 오염 등 온갖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값진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습지는 생태계의 암울한 변두리가 아니라 생명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자 인간에게 가장 많은 혜택을 줄 노른자위 땅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강호정 이화여대 환경학과 교수 hjkang@ewha.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