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시력을 잃은 퇴역 장교(알 파치노)가 여인과 탱고를 추는 장면은 애잔한 하이라이트다. 탱고는 1870년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 항구의 뒷골목에서 탄생했다.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노동자들은 탱고를 추며 향수를 달랬다. 탱고가 태동하던 시기, 춤출 여성이 부족한 때는 남성끼리 부둥켜안고 거칠게 추었다. 가난한 이주자들이 모이던 카페와 식당이 밀집된 ‘보카’ 부둣가와 이탈리아 출신 사업가가 주거지구로 개발해 고향 시칠리아의 지명을 붙인 ‘팔레르모’를 중심으로 탱고 클럽이 발달했다.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 역시 실험적 탱고 문화의 거점이다.
아프리카 흑인들이 들여온 음악 ‘칸돔베’의 경쾌한 리듬과 쿠바 선원의 애환이 담긴 무곡 ‘하바네라’, 아르헨티나 가우초(목동)들이 부르던 노래와 함께 독일 이민자들이 가져온 악기 ‘반도네온’의 슬픈 선율이 탱고에 녹아들었다. 아르헨티나 하류층의 오락거리였던 탱고는 대서양을 건너며 콘티넨털 탱고로 변신해 20세기 초 파리 상류층을 매혹시켰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번진 탱고 열풍은 ‘남미의 파리’로 불리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역수출돼 탱고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탱고의 인기는 빈, 뮌헨, 리스본 등 유럽과 뉴욕, 포틀랜드,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도쿄, 상하이, 방콕, 뉴델리 등으로 확산됐다.
영국에서 ‘탱고 테라피’가 유행할 정도로 탱고는 치매 예방과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 ‘영혼의 섹스’로 불리는 탱고 율동은 1분당 140번으로,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낄 때의 심장 박동 수와 같다고 한다. 남유럽의 그리스, 이탈리아, 키프로스는 화려한 탱고 축제로 유명하다. 지중해 연안의 초호화 리조트에서 이어지는 탱고마라톤은 럭셔리 레저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춥고 우울한 겨울을 녹이는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핀란드의 탱고는 ‘비공식 애국가’로도 불린다.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