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07>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3월 16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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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신은 그날로 대군을 풀어 대(代)나라 도성인 평성(平城)을 에워싸게 하였으나 날이 저물도록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다. 밤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횃불과 화톳불을 많이 피워 엄청난 대군이 성을 에워싼 듯 보이게 하고, 밤새 함성과 북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하라!”

그렇게 명을 내려 성안의 대나라 군민들을 겁만 줄뿐 성을 들이치지 않았다. 야습이라도 하려는 줄 알고 기다리던 장이가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무얼 기다리고 계시오? 어찌하여 에워싸고만 있습니까?”

“평성은 북쪽 흉노를 막기 위해 쌓은 데다, 조나라가 대대로 그 성벽을 높이고 두껍게 해 여간 든든한 성이 아니오. 하열이 비록 용렬한 장수라 하나, 5만이 넘는 성안 군민이 힘을 합쳐 지키면 우리 군사로는 백날을 들이쳐도 우려 뺄 수가 없소. 그래서 하열을 평성에서 끌어내기 위해 허장성세(虛張聲勢)로 겁을 주고 있는 것이오.”

“그런다고 하열이 든든한 성을 버리고 다른 데로 달아나겠습니까?”

“달아나게 만들어야지요. 실은 상산왕께서 그 일을 좀 해주셔야 되겠소.”

“어떻게 하면 됩니까?”

“오늘밤 가만히 군영을 돌며 조나라로 달아나는 동쪽 길과 위나라로 내려가는 남쪽 길은 횃불과 화톳불의 밝기를 배로 하시오. 성벽 위에서 보면 한눈에 서북쪽의 에움이 엷음을 알 수 있게 해야 하오. 함성과 북소리도 마찬가지요. 동쪽과 남쪽은 크고 서북은 작아 역시 서북쪽의 에움이 엷은 듯 느끼게 해야 하오.”

그리고 조참을 불러 다시 명을 내렸다.

“장군은 밤중에 가만히 군사 2만을 이끌고 진채를 빠져나가 남쪽으로 갔다가 내일 날이 새면 먼지와 함성을 일으키며 남쪽에서 새로 달려온 양 중군(中軍)으로 돌아오시오. 장군의 진채는 그대로 남겨 군사들이 그 안에 머물고 있는 듯 꾸며두어야 하오.”

거기까지 듣자 장이도 조참도 한신의 뜻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생각이 깊으면 걱정도 많은지 장이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듯 한신에게 물었다.

“비워둔 서북쪽은 새외(塞外)의 험지(險地)가 아니면 오랑캐의 땅입니다. 하열이 아무리 다급하다 해도 자기 나라를 버리고 그리로 달아나겠습니까?”

“짐승이 사냥꾼에게 잡히는 것은 제 풀에 놀라고 겁먹어 사냥꾼이 모는 데로 달아나기 때문이오. 두고 보시오. 하열은 닷새 안에 평성을 나와 북쪽으로 달아나다 우리에게 사로잡힐 것이오.”

한신이 빙긋 웃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도 장이와 조참은 여전히 미덥지가 않았으나 대장군 한신의 군명이라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날 밤 하열을 비롯한 평성 안의 군민들은 성밖 사방에서 타오르는 한군의 횃불과 화톳불에 몹시 놀랐다. 사방이 대낮같이 밝아 몇 십만 대군이 평성을 에워싼 듯했다. 거기다가 함성과 북소리가 밤새도록 끊이지 않아 금세라도 대군이 성벽을 넘어 올 듯했다.

그 바람에 밤새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한 하열이 날이 새는 걸 보고 겨우 눈을 붙이려는데 다시 성벽 위를 지키던 군사들에게서 급한 전갈이 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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