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78)

  • 입력 1997년 3월 25일 07시 52분


거리에서〈1〉 독립군이 서영에게 이제 그만 기숙사를 나와야겠다고 이야기를 한 건 여자가 찾아온 지 꼭 열흘이 지난다음 금요일의 일이었다. 『나, 아무래도 기숙사에서 나와야겠어』 함께 찻집에 앉았다가 그는 그 말을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왜요?』 『이제 그럴 때가 된 것 같아서』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지금 하고 있잖아』 그 말에 서영은 지난번 정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자신에게로 다가왔던 재규어의 주인을 떠올렸다. 『그 일 때문인가요?』 『무슨 일?』 『지난번 그 남자……』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야』 『그럼 갑자기 왜요?』 『어차피 방학이면 나와야 하잖아』 『그럼 그때까지 있으면 되잖아요』 『이번 방학 동안 서울에 있을 생각이야. 그런데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다가 막상 방학을 하면 마땅히 있을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미리 나오려는 거고』 『정말 그것 때문인 건 아니죠?』 『아니야』 그러나 그녀는 믿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날에도 그는 그 이야기를 했었다. 그 남자가 누군지 아느냐고. 처음 기숙사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그는 그 기숙사에서 졸업을 해야 할 것처럼 말했다. 그러다 학교 앞에서 아주 이상한 모습으로 재규어를 만나고, 그런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숙사에서 나와야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재규어를 처음 봤을 때에도 그는 그런 생각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건 그냥 한 번 해보는 투정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기숙사로까지 여자가 찾아온 다음 그는 그곳에 있기가 불편해져 견딜 수 없었다. 다시 여자가 찾아올까봐 여자를 피해 기숙사에서 나오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재규어가 사촌동생에게까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그녀를 마음 속 깊이 두고 있다는 얘기였다. 『얼마 전 어떤 여자가 찾아왔어. 기숙사로』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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