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66)

  • 입력 1997년 3월 12일 08시 04분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 〈21〉 그러나 그녀는 그 서랍에 채워질 자신의 사랑이 어떤 빛깔일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냥 자신이 꿈꾸는 대로 가을하늘처럼 늘 투명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독립군은 집까지 그녀를 데려다주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녀는 왜 전화를 걸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설마 전화번호를 잊어버린 건 아닐 테고요』 『그냥 걸지 못했던 거야』 『왜요?』 『다음날 서영이가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그런 생각을 했거든』 『운하씨가 왜요?』 『그날 공원에서… 그래서 안 나오는 걸로 생각했어. 서영인 처음이었고, 그건 누구에게나 부끄러울 수 있는 일이니까』 『나 그럴 만큼 순진하지 않아요. 그리고 운하씨처럼 나도 기뻤고. 우리가 그럴 수 있다는 게…』 『첫날엔 그래서 전화를 걸 수 없었던 거고, 다음날 또 나오지 않으니까 그 생각이 더 깊어지기도 하고, 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고. 그런데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물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래서 금요일날 아침에도 다른 때보다 일찍 역에 나와서 기다렸던 거고, 오늘도 그랬던 거고』 『그런 거 가리는 사람 아니었잖아요』 『나도 몰라. 전화를 걸고 싶어도 걸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게 나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정말 그만큼 날 좋아해요?』 『그래. 그러니까 들어가서 쉬어, 오늘은』 그녀는 한사코 밖에 더 있다가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는 그녀의 집 앞까지 오토바이로 그녀를 데려다 주고 돌아섰다. 『대신 오늘은 꼭 전화를 할 테니까』 『그래요. 그럼 나 들어가서부터 기다릴 거예요. 알죠?』 『그래』 『나도 그만큼 운하씨를 좋아한다는 얘기예요』 『알아』 그러나 그날도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다.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 이미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전화를 걸려면 식당으로 가기 바로 전 그때 했어야 했다. 그날 저녁 한 여자가 느닷없이 그를 찾아오지만 않았더라면 물론 이후 시간에도 전화를 걸 수 있었을 것이다.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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