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도서관] 막장SF? 청년 로봇 베이비시터와 할머니의 아름다운 교감…‘대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7일 14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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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로봇의 사랑을 그린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윤이형 씨의 소설 ‘대니’에선 할머니가 로봇과 교감을 나누면서 그라지던 감정이 되살아난다.사진 동아일보 DB
인간과 로봇의 사랑을 그린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윤이형 씨의 소설 ‘대니’에선 할머니가 로봇과 교감을 나누면서 그라지던 감정이 되살아난다.사진 동아일보 DB

“말들은 장식이다. 혹은 허상이다. 기억은 사람을 살게 해주지만 대부분 홀로그램에 가깝다. 대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주어진 끝을 받아들였다. 나는 일흔 두 살이고, 그를 사랑했고, 죽였다.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이 희미하게 사라져가지만 그 사랑은 변하지 않고, 나는 여전히 살아 그것을 견딘다.”

-윤이형 소설 ‘대니’ 중 일부

‘대니’의 작가 윤이형 씨.사진 동아일보 DB
‘대니’의 작가 윤이형 씨.사진 동아일보 DB

이 이야기는 기이하다. 할머니가 딸의 부탁을 거절 못하고 6개월 된 아기를 맡아 키우는 건 흔한 일이다. 육아에 지친 할머니의 어려움도 그렇다. 그런데 할머니 앞에 베이비시터 로봇이 나타난다. 로봇은 스물네 살 청년의 모습이다.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대신해 아이를 맡아주고 할머니에게 사랑 고백까지 한다.

얼핏 막장SF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인생의 끝’을 향해 가던 할머니는 로봇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70여 년 살아온 세상이 너무나 익숙해져 감정이 사그라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대니와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게임’을 하면서 ‘주인 없는 집 담장 안에 소담스럽게 핀 능소화’나 ‘꽃집 진열대에 걸린 채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견디는 벌레잡이통풀의 벌레주머니’ 같은 것들을 자신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읽는 이들에게도 감정의 소중함,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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