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Travel]14세기 지중해를 장악한 해상공화국… 번영의 흔적을 돌아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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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베네치아와 유럽역사

수상도시 베네치아에선 이렇듯 물길도 골목을 이루고 이런 다리는 횡단보도 역할을 한다. 곤돌라가 지나는 물길의 다리에서 촬영한 골목 수로 모습.
수상도시 베네치아에선 이렇듯 물길도 골목을 이루고 이런 다리는 횡단보도 역할을 한다. 곤돌라가 지나는 물길의 다리에서 촬영한 골목 수로 모습.
‘베네치아에 다리가 없었다면…, 유럽은 섬에 불과했을 것이다.’

14년 전 베네치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탈리아 시인 마리오 스테파니의 이 말. 1000년 역사 베네치아공화국(697년∼1797년)이 유럽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해주는 은유적 표현이다.

‘수상도시’ 베네치아. 거기엔 다리가 400개나 있다. 하지만 그 다리가 어떻게 유럽의 흥망에 관여했는지를 설명하기란 간단치 않다. 그 함의(含意)를 제대로 알려면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펼쳐진 유럽 역사를 세밀하고 폭넓게 들춰야 한다.

잘 알려져 있듯 베네치아는 강 하구의 모래톱이 가둔 개펄의 얕은 호수(석호·潟湖) 위에 건설된 수상도시다. 하지만 코앞의 멀쩡한 육지를 두고 옹색하기 이를 데 없는 물위에 모여 살게 된 이유나 배경,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선택으로 배수(背水)의 진(陣)이었다.

그들을 위협한 것은 게르만족의 바바리아인이었고, 때는 6세기. 바바리아인은 북방에서 남하하던 훈 족에 밀려 베네치아에서 멀지 않은 밀라노 근방 롬바르디아평원까지 밀려 내려왔다. 그 바람에 거기 살던 베네토 주민은 강 하구로 쫓겨났고, 급기야는 이 석호 안에 드문드문 떠있는 섬으로 피신했다. 피신 기간이 길어지자 주민들은 석호에 뗏목을 띄워 삶의 공간을 조금씩 늘려 나갔다. 시간이 지나며 뗏목은 서로서로 연결됐고, 그 위에 집들이 들어섰다.

그것도 모자라 개펄에 나무말뚝을 촘촘히 박고 그 위에 건물을 지으면서 현재와 같은 도시 모습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베네치아라 해서 모든 집이 수상가옥도 아니고, 모두가 물위에 살지도 않는다. 현재 27만 명의 베네치아 시민 중 석호 주민은 3만 명뿐. 나머지는 구시가에 6만 명, 해안가에 17만 명 등 육지에 거주한다.

이런 베네치아가 지중해의 강자로 등장한 건 서기 697년. 선출한 ‘도제(Doge·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자치공화국의 면모를 갖추면서다. 당시 그들에겐 비전이 있었다. 동방무역을 독점하는 강력한 해상국가다. 지도를 보자. 아드리아 해 북단에 치우치긴 했어도 베네치아는 지중해의 중심이다. 12세기 당시 그 동쪽엔 유럽 최고의 부국인 비잔티움(동로마제국·330∼1453)이 있었다. 그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은 중국 등 동방에서 온 귀한 물건이 들어오는 실크로드의 종착점. 그리고 지중해는 유통과 소통 면에서 유럽의 ‘고속도로’였다. 그런 만큼 빠르고 튼튼한 무역선만 있다면 베네치아는 동서교역의 전진기지로 일어서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게다가 베네치아인들이 누구인가. 땅을 버리고 바다를 택한 사람들이고, 달아나려 해도 달아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더이상 두려울 게 없는, 이판사판 헝그리 정신으로 똘똘 뭉친 지상최고의 억척 공동체였다. 공화국 체제를 갖추자 자연스럽게 강력한 도시국가로 발전했다. 그런 베네치아에 힘을 보태 준 것이 있었으니 빠르고 튼튼한 배, 갤리선이었다. 갤리선은 노를 저어 이동하는 거대한 지중해 목선을 말한다. 그 배는 분업 조립으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둘레 3.4km(45ha)의 거대한 베네치아의 조선소에서 만들었다.

베네치아는 이 배로 콘스탄티노플과 동방무역을 했고 그걸 통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런 와중에 제4차 십자군전쟁(1202∼1204)을 추진하던 원정군은 1201년 해상수송능력이 뛰어난 베네치아와 계약을 맺는다. 계약 내용은 원정군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까지 배로 수송해주고 1년간 식량 등 군수지원까지 해주는 것. 원정군은 그 대가로 엄청난 금액을 약속했다. 돈벌이라면 뭐든 마다않는 장사꾼 베네치아가 이를 마다할 리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원정군의 구성이 시원찮았던 것. 왕국은 불참하고 대개가 빈약한 지방영주뿐이어서 약속한 군비를 받는 게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장사꾼 공화국 베네치아에 포기란 없었다. 이들은 원정군에 헝가리왕국의 차라(Zara)항을 공격하라고 꼬드겼다. 거기서 얻은 전리품으로 원정비용을 충당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차라는 십자군에 약탈당했다. 그런데 당시 헝가리왕국은 로마가톨릭의 형제국이었다. 바티칸의 교황이 대로한 것은 당연지사. 교황은 제4차 십자군을 파문했다.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베네치아가 아니었다. 내친김에 베네치아는 제4차 십자군 원정의 선봉에 나섰다. 그러고는 1203년 콘스탄티노플 공격을 주도했다.

그때 함락된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선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약탈이 자행됐다. 베네치아의 상징으로 현재 산마르코대성당을 장식한 청동사두마차상이 가장 대표적인 약탈물. 비잔티움제국은 이때 십자군 공격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고 기울기 시작해 결국 1453년에 그 운을 다한다.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역사의 소용돌이는 이게 끝이 아니다. 비잔티움제국의 뒤를 이은 오스만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함락에도, 이후 기울던 오스만제국의 숨통을 완전히 끊은 레판토 해전(1571년)의 승리에도 베네치아는 관여했다. 레판토 해전은 신성동맹의 연합군이 오스만제국의 갤리선 함대를 무참히 박살냄으로써 승리한 전쟁. 당시 압승의 핵심은 우수한 전함이었는데 그 절반은 베네치아가 거대조선소 아르세날(Arsenal)에서 만들어 공급한 것이었다. 이 해전을 계기로 베네치아는 지중해의 패권을 완벽하게 장악한다. 반면 오스만제국은 더 이상의 팽창을 저지당하게 됐다. 그 이후 세계의 중심이 바뀌었다. 부(富)의 이동방향이 더 이상 동쪽(동양)이 아니라 서쪽(서양)으로 바뀐 것인데 그 패턴은 21세기인 오늘까지도 변치 않고 있다. ‘베네치아에 다리가 없었다면…’이란 시인 마리오 스테파니의 말엔 바로 이런 역사가 함축돼 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그런 역사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1786년 베네치아 방문 중에 남긴 이 말이 그걸 증명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나는 가치를 느낀다. 그것은 결집된 인간의 힘이 만들어낸 위대하고 존경할 만한 작품이다. 한 사람의 지배자가 아니라 수많은 민중이 남긴 훌륭한 유적이다.”

세상은 재밌다. 내게 베네치아 역사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영면 중인 복음사가 ‘산마르코(마르코 혹은 마가)’의 유해를 훔쳐와 산마르코성당에 수호성인으로 모신 것이나 형제국인 헝가리왕국의 항구를 공략해 약탈하는 행위 등으로 인식되는데 괴테는 그런 행위조차 민중의 훌륭한 유산으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기야 역사란 전쟁으로 일관하고 그 전쟁의 승자가 주인공으로 기억되고 있으니 나처럼 루저의 시각을 담은 단평(短評)은 지극한 소수의견에 머물 수밖에.

베네치아의 수상버스 바포레토.
베네치아의 수상버스 바포레토.
“그랜드 캐널을 감상하려면 곤돌라보다 바포레토 타세요” ▼

골목길 투어


베네치아의 볼거리라면 단연 곤돌라부터 든다. 하지만 내겐 골목길이었다. 미로처럼 이어진 고풍스러운 골목에서의 배회. 밀라노를 맨살로 안아보는 최고의 매력이었다. 잘빠진 곤돌라에 앉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30분가량의 물길투어보다 훨씬 재밌는….

올 7월 나는 그 골목을 정처 없이 쏘다녔다. 불과 몇 m 떨어진 곳이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반해, 어떤 골목은 관광객도 보이지 않았고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그런 골목의 공기에서는 중세의 고답적인 향기마저 느껴졌다. 골목의 막장은 좁은 수로였고, 그리로는 이따금 곤돌라가 지나갔다.

그런 골목엔 어김없이 한적한 레스토랑(비스트로 드 베네치아)이 숨어있듯 자리 잡고 있다. 이젠 사라진 서울 종로의 옛 피맛골을 연상시키는…. 나는 거기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홀짝이며 이 수상도시의 매력을 음미했다. 그때 베네치아의 명물 ‘먹물 파스타’와 만났다. 내 나름의 밀라노를 추억하기에 충분한 식사였다.

베네치아에선 물길도 골목을 이룬다. 그리고 그 물길에서 가장 이름난 것이라면 리알토 다리(1591년)와 탄식의 다리(Bridge of Sigh·1602년)다. 탄식의 다리는 도제(베니스의 지도자) 궁전의 감옥과 통하는 팔라초 거리의 일부. 이 운치 있는 이름은 영국시인 조지 바이런(1788∼1824)이 지었다. 이 다리를 건널 때 바라다보이는 광경이 투옥되는 죄수가 볼 수 있는 마지막 베네치아의 모습이란 말이 시인의 상상력에 불을 붙인 듯하다.

바포레토 여행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한다. 베네치아에서는 곤돌라 대신 바포레토를 타라고. 그렇게 절약한 돈으로는 골목길에서 젤라토(천연과즙을 넣어 만든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를 사서 먹거나 골목식당에서 좋은 음식과 와인을 마시며 도시의 정취를 즐기라고.

‘바포레토(Vaporetto)’는 베네치아 시민의 발이라 불리는 수상버스. 편도에 7.5유로로 곤돌라(30분에 50유로 내외)에 비해 매우 싸다. 노선은 세 개지만 관광용으로는 그랜드 캐널(Grand Canal)을 따라 산타루치아(1954년 개통) 역과 산마르코광장을 오가는 1번 노선(편도 45분)을 추천한다.

‘대운하’를 뜻하는 그랜드 캐널은 수상도시 베네치아를 ‘S’자로 통과하는 폭이 넓은 물길을 말한다. 곤돌라가 주로 좁은 수로를 다니는데 반해 바포레토와 워터택시(소형선박) 같은 모터보트는 그랜드 캐널로 운행한다. 그중 바포레토는 사람과 화물을 두루 싣고 정기 운행하는 시내버스. 1번 노선엔 중간 정거장이 15개다. 편도권을 사면 한 방향으로 온종일 무제한 탑승할 수 있다.

출발 장소인 산타루치아 역은 석호를 만든 강 하구를 매립해 수상도시 앞까지 연장한 육상철도의 종착역. 여기서 출발하면 15∼16세기 유대인 거주지역인 ‘게토(Ghetto)’를 지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이어 그랜드 캐널의 물가에 포진한 교회 5개 중 첫 번째로 산마르쿠올라 성당(12세기)을 스쳐 세계 최초 카지노로 알려진 200년 역사의 ‘카지노 드 베네치아’를 거친다. 베네치아를 자주 찾았던 독일 음악가 바그너가 1883년 숨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이어 ‘금빛 궁전’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카도로(Ca‘ d’Oro·1430년 건축) 궁을 볼 수 있다.

다음은 베네치아의 명소 ‘리알토 다리’. 이곳은 그랜드 캐널에서도 운하 폭이 가장 좁은 곳으로 베네치아의 상업중심. 12∼16세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수입한 이슬람과 중국의 문물을 오스트리아 소금과 거래하던 곳이다. 안토니오 다 폰테가 박스 형태로 설계한 이 통로형 다리(Covered Bridge)는 실내가 모두 상가다. 다리 주변은 시장인데, 매일 배로 실어온 싱싱한 생선과 채소를 오전 7시 반부터 팔고 있다. 생선시장 캄포는 정오, 야채시장 에르베리아는 낮 1시 반까지. 리알토의 풍광을 즐기자면 그 옆 본베키아티 호텔(1790년 건축)에 묵거나 그곳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주문하면 된다.

이어 리알토 지역의 12세기 교회 산실베스트로 성당과 ‘카 레조니코’라 불리는 나무다리(1930년대), 구겐하임재단이 소유한 미술관 중 하나인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아름다운 교회 ‘기글리오 성모마리아’ 성당이 차례로 나타난다. 성당 옆 건물은 베네치아 최고급(5성) 호텔 그리티 팰리스(Gritti Palace). 옥상 전체가 테라스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서머싯 몸과 같은 유명작가가 즐겨 찾던 명소다. 세계적인 여행매거진 콩드나스 트래블러스의 올해 골드리스트에도 올랐다.

좀더 가면 125개 석상으로 장식한 새하얀 라살루트성당. 그 교회를 지나면 베네치아의 심장인 산마르코광장이 나타난다. 광장에는 산마르코성당과 거대한 타워(종탑)가 함께 서 있다. 9세기의 산자카리아 성당은 산마르코성당과 나란히 붙어있다. 타워는 엘리베이터(유료)로 올라간다. 석호의 수상도시가 어떤 모습인지 한눈에 알 수 있는 멋진 곳이다.
▼ Travel Info ▼

이탈리아: 이탈리아 정부관광청 www.enit.it(한글) www.italia.it(영어)

베네치아: ◇유용한 사이트 ▽관광정보 검색엔진: www.venice.nu 바포레토 운항스케줄도 있다. ▽카지노 베네치아: www.casinovenezia.it/en ▽비스트로 드 베네치아: 골목길의 레스토랑. www.bistrodevenise.com

밀라노: 밀라노에서는 ‘2015 밀라노 엑스포’가 한창이다. 폐막일은 10월 31일. 주제는 ‘지구의 식량조달, 생명의 에너지(Feeding the Planet, Energy for Life)’. 개장시간은 오전 10시∼오후 11시이며 야간입장은 오후 7시부터.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70개 지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탈리아는 다양한 이탈리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관을 별도로 운영중이다. www.expo2015.org

베네치아(이탈리아)=조성하 전문기자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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