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게 시작해 찬란하게 마무리… 관현악으로 듣는 해돋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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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

며칠 동안 아침 햇살이 무척 밝았습니다. 예전에 쓴 글들을 찾아보니 매년 이맘때가 되면 아침마다 햇살에 마음이 설렜던 모양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일찍 눈을 떠서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집어든 음반은 라벨(사진)의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1912년)에 나오는 해돋이 장면이었습니다.

고요하게 곡이 시작되고 가만가만 움직이는 현악을 배경으로 플루트가 잔잔한 물의 흐름 같은 분산화음을 연주합니다. 새벽, 연인을 해적들에게 빼앗긴 양치기 다프니스가 님프의 동굴 앞에서 실신해 잠들어 있습니다. 아침 안개가 점차 걷히고, 피콜로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동의 피리 소리를 묘사합니다. 천천히 미동하던 현의 움직임은 점차 빨라지고, 마침내 전체 관현악의 찬란한 합주가 지평선 위로 떠올라 만물을 비추는 태양의 축복을 나타냅니다.

이 곡이 나온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오케스트라의 기능이 복잡해지고 음악에서도 눈으로 보는 듯한 세밀한 묘사, 즉 ‘회화성’이 중요한 이슈가 되었던 시대입니다. 해돋이 같은 자연현상을 음악으로 나타낸 작곡가들도 많았죠. 폰키엘리의 오페라 ‘라 조콘다’에 나오는 ‘시간의 춤’이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에도 멋진 해돋이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푸르게 펼쳐진 봄에서 초여름, 하루를 함께 시작할 만한 해돋이 음악으로는 이 라벨의 작품만 한 것이 없게 느껴집니다.

음악감독 미코 프랑크가 지휘하는 프랑스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내한 콘서트에서 이 발레음악에서 발췌한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을 연주합니다. 미코 프랑크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자주 객원 지휘해 한국 청중에게도 친숙한 인물입니다. 손열음이 협연하는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와, 시벨리우스의 극(劇)음악에서 딴 ‘크리스티안 2세’ 모음곡도 연주됩니다. 라벨의 다른 모음곡인 ‘어미 거위’ 모음곡까지, 이날 모음곡만 세 곡이 선을 보입니다. 오케스트라 연주 하면 흔히 연상하는 엄숙함이나 장중함보다는 감각적이고 화려한 색채가 앞서는 콘서트가 될 듯합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다프니스와 클로에#오케스트라#미코 프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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