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차이콥스키 ‘비창’ - 말러교향곡 9번 줄거리, 왜 같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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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신 뒤, 여주인공은 새 가족으로부터 고통을 받지만 구원의 남성이 나타난다….” 아는 얘기인가요? 하지만 여기까지로는 ‘콩쥐팥쥐’인지 ‘신데렐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두 얘기가 동일한 서사(敍事)구조, 즉 줄거리를 갖고 있으니까요. 언젠가 이 코너에서 언급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같은 서사구조로 분석됩니다. 단테 ‘신곡’에 나오는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얘기도 한데 묶입니다. 여성이 참사랑을 찾았지만 제도 속에서 금지된 사랑이었고, 결국 희생을 당하게 되죠.

문학작품 속에서는 이처럼 같은 줄거리를 가진 작품이 많습니다. 그런데 음악작품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예를 들어 이런 경우입니다. 1악장, 갈피를 잡지 못하는 공허의 표현으로 시작한다. 고통과 갈등의 순간이 지나간 뒤 슬픔과 평온이 교차하는 분위기로 끝난다. 2악장, 즐거웠던 과거를 회상하는 듯하지만 그리움이 배어 있는 춤곡. 3악장, 빠르고 파괴적인 주제가 제시되어 극적으로 고조되고 끝난다. 4악장, 한숨 쉬는 듯한 하행(下行)음계 속에 끝없는 슬픔으로 빠져든다. 사라지듯이 전곡이 끝난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1893년)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 비창교향곡이로군’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말러의 교향곡 9번(1909년)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곡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같은 동기나 주제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두 곡의 줄거리는 같은 청사진을 사용한 것처럼 똑같습니다.

말러가 차이콥스키를 모방한 것일까요? 그는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을 여러 차례 지휘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곡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습니다. 두 곡이 유사한지에 대해 언급한 기록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두 곡의 유사성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말러가 ‘비창’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줄거리 또는 서사구조만큼은 높이 평가해 자기만의 버전으로 형상화했을 수도 있겠죠.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임헌정 지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말러의 교향곡 9번을 연주합니다. ‘비창’ 교향곡을 좋아하지만 말러는 생소한 음악 팬이라면, 이 곡을 들으며 두 곡의 줄거리와 닮은 점을 음미해볼 만하겠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차이콥스키#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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