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두 걸작 잉태시킨 보로딘 오페라 ‘이고리 공’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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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네요. 음악월간지의 의뢰로 리뷰를 쓰기 위해 알렉산드르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리 공’을 보러 갔습니다. 어이쿠, 한 막을 생략했는데도 열두 시가 다 되어 끝났습니다. ‘러시아인들의 스케일이란 참…’, 이 오페라가 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당하고’ 나니 혀가 내둘렸습니다.

이고리 공은 12세기 러시아 제후 이고리 스뱌토슬라비치의 중앙아시아 원정기를 오페라로 만든 작품입니다. 이 작품엔 19세기 중앙아시아를 병합하고 더 남쪽을 넘보던 러시아인들의 확장의식이 담겼죠. 그래서겠지만 선율과 관현악에 중앙아시아 초원의 향기가 물씬 배어납니다. 특히 작품 속 ‘폴로베츠인의 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음악사상 다른 두 걸작을 탄생시키는 마중물이기도 했습니다. 보로딘은 이 오페라를 쓰기 위해 수많은 재료를 모아두었지만 오페라에 다 넣지 못하고 남은 재료들로 교향곡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교향곡 2번입니다. 그가 이고리 공을 끝맺지 못하고 1887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하는 작업은 친구 작곡가인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맡게 되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고리 공을 마무리하다가 자신도 남쪽 아시아 세계를 소재로 작품을 하나 쓰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천일야화’를 소재로 쓴 작품이 교향모음곡 ‘셰에라자드’(1888)입니다. 보로딘이 ‘이고리 공’을 소재로 오페라를 쓰려던 계획이 결과적으로 세 개의 우뚝한 작품 패키지를 형성하게 된 셈입니다.

스위스 로망드 교향악단이 1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갖는 내한연주에서 일본의 신예 지휘자인 야마다 가즈키 지휘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를 연주합니다. 계절감에 잘 맞는 선곡입니다.

더운 여름날 저녁이 오면, 해가 지고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서남아시아 초원의 환상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이럴 때 셰에라자드나 폴로베츠인의 춤, 보로딘의 교향곡 2번은 쉽게 집어 들게 되는 선택이죠. 보로딘의 관현악곡인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나 현악사중주 2번도 들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오페라#이고리 공#알렉산드르 보로딘#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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