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28>추위를 쫓는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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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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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자로 알려져 있는 김육(金堉·1580∼1658)은 젊은 시절 광해군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가평의 잠곡(潛谷)이라는 곳에 들어가 직접 나무를 하고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넉넉지 못한 살림인지라 시골집이 변변했을 리 없습니다. 사방은 온통 눈으로 뒤덮이고 하늘은 찌뿌듯한 게 답답한 김육의 마음을 닮았나 봅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콩죽 한 사발 끓여 먹고 솜이불 끼고 집 안에 콕 박혀 있습니다. 겨울의 신이 추위라는 병사를 몰아 산중의 집으로 들이닥쳤지만 감히 집 문턱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것은 겨울을 밀어내는 집 ‘배동와(排冬窩)’라는 이름 때문이지요. 물론 따끈한 콩죽도 수비에 힘을 보태었겠지요.

콩죽을 먹어본 지가 한참 된 것으로 보아 요즘엔 콩죽이 꽤나 귀한가 봅니다만 예전에 콩죽은 가난한 사람의 음식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청빈한 학자가 숭상하였습니다. 공자가 ‘콩죽을 먹고 물을 마시더라도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극진히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효’라고 한 데서 철숙음수(철菽飮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습니다. 조선의 큰 학자 송시열(宋時烈)이 ‘콩죽에 온돌방이면 책 보기에 충분하다(豆粥溫突, 足可觀書)’고 한 것도 청빈한 학자의 삶을 말한 것입니다.

여유가 있다면 따라해 보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위항인 박윤묵(朴允默)이 ‘상강(霜降)에 날이 매우 추워 콩죽과 막걸리를 가지고서 집안 식구들과 취하도록 마시고 배부르도록 먹었다. 또 이웃의 여러 사람에게 나주어 주었다. 마음이 매우 흡족하여 추운 날씨가 힘든 줄도 몰랐다. 마침내 이 시를 지어 기록한다’라는 제목의 시를 지은 바 있습니다. 제 식구뿐 아니라 이웃까지 배부르고 따뜻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겠습니까?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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