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빛과 소금으로]<1>전주안디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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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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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게 삽시다’… 깡통교회에 넘친 ‘비움의 사랑’

박진구 담임목사
박진구 담임목사
“안디옥교회로 가주세요.”

“아, 깡통교회요. 훌륭한 교회죠.”

“깡통요?”

택시운전사에게서 들은 ‘깡통교회’라는 말에 궁금증이 생겼다. 게다가 ‘교회가 훌륭하다’는 얘기는 오랜만이라 낯선 느낌마저 들었다.

15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택시에서 내려 전주안디옥교회의 본당을 보는 순간 의문이 사라졌다. 우중충한 색깔의 볼품없는 퀀셋 건물이었다. 건물 위의 십자가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전주안디옥교회’라는 간판을 빼면 영락없이 이재민수용소를 연상시킨다. 담장도 없이 길 쪽으로 난 본당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교회 세습과 호화건축, 목회자의 비리와 다툼 등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은커녕 숱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한국 개신교계에서 깡통교회는 존재 자체가 ‘기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교회를 방문했다는 한 누리꾼은 블로그에서 “전주안디옥교회가 부럽고 그런 아름다운 교회를 가진 전주라는 도시가 부럽다”고 했다.

비행기 격납고에 양철 씌운 교회본당 미군이 사용하던 소형 비행기 격납고에 양철을 씌운 전북 전주시 금암동의 전주안디옥교회 본당. 이곳은 볼품없는 외관과 달리 이제는 부유해진 일부 한국교회가 배워야 하는 나눔사랑의 상징이 됐다. 전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비행기 격납고에 양철 씌운 교회본당 미군이 사용하던 소형 비행기 격납고에 양철을 씌운 전북 전주시 금암동의 전주안디옥교회 본당. 이곳은 볼품없는 외관과 달리 이제는 부유해진 일부 한국교회가 배워야 하는 나눔사랑의 상징이 됐다. 전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깡통교회가 일구고 있는 ‘가난의 기적’은 1983년으로 거슬러간다. 현재 선교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동휘 목사(76)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미군이 사용하던 소형 비행기 격납고를 구했다. 그 위에 양철지붕을 덮고 예배를 시작했다. 바닥은 진흙이나 다름없었고 한여름이면 본당은 말 그대로 찜통이 됐다. 비가 틈새로 줄줄 새 예배를 중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비좁고 불편한 깡통교회에 신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70여 명이던 신자는 현재 재적 기준으로 8000명이 넘고 주일(일요)예배 때는 5000여 명이 출석한다.

이곳에서 마주친 신자 김미경 씨(52·전주시 완산구 서신동)는 옛날과 비교하면 지금은 ‘호텔’이라며 웃었다. “여름엔 사우나탕이 돼 진땀을 흘렸고 겨울에는 난로에서 나무를 때며 오들오들 떨면서 예배를 봤어요.”

신자가 늘어서 어쩔 수 없다며 대형 건물을 짓거나 넘치는 교회의 재산을 둘러싼 극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는 일부 교회와는 판이한 모습이다.

“우리 교회는 건축 헌금 광고가 나오지 않아요. 목사님이 헌금 얘기할 때는 선교비가 부족할 때입니다. 다른 교회에도 여러 곳 다녀봤지만 신자들이 이렇게 자랑스러워하는 교회는 처음입니다.” 또 다른 신자가 말을 받았다.

이 교회에서도 ‘건축’ 사업이 있기는 했다. 현재 800석 규모의 본당은 개척 당시 지금의 3분의 1 크기였지만 신자가 늘자 다시 깡통 구조물을 앞뒤로 붙였다. 한 해 1000명 이상의 국내외 교회 관계자가 이 교회를 배우기 위해 방문한다. 깡통교회가 가진 그 흡인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본당 옆 사무실에서 박진구 담임목사(59)를 만났다. 굳이 교회 일을 밖에 알릴 필요가 없다며 여러 차례 인터뷰를 사양했던 그는 해외 파송 중인 선교사들의 홈커밍 행사에 참여하느라 단체복인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싱가포르와 필리핀에서 해외 선교사로 활동하다 이 목사의 뒤를 이어 2006년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이 목사님이 내걸었던 교회 표어가 ‘불편하게 삽시다’였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 교회의 정신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여리고의 세리(稅吏)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삭개오가 재산의 반을 잘라 가난한 자와 나눕니다. 교회가 선교와 이웃을 위해 나누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너무 당연한 거죠. 교회가 가난해져야 사회가 부유해집니다.”

이 교회는 매년 전체 예산의 60%, 많을 때는 70% 가까운 비용을 선교와 사회구제비로 지출하고 있다. 1986년 첫 선교사를 내보낸 이후 현재 90여 개국에 400명의 선교사를 파송 후원하고 있다. 또 교회는 지역의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노인복지회관을 위탁 운영하고, 농어촌 미자립 교회를 위한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매주 수요일 교회에서는 인근에서 올라온 농수산물을 판매하는 장(場)이 선다. 여기서 나오는 1년 수익 5000여 만 원도 농어촌 교회와 나눔 활동에 다시 사용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설 투자와 신자들의 편의를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크리스마스 예배 때 다른 교회라면 흔히 나눠주는 간단한 물품이나 빵조차 나눠주지 않는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호화건축 등 교회의 성장지상주의에 대해 묻자 박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 교회도 주일이면 여러 차례 나눠 예배를 하지만 800석 본당에 5000여 명이 몰려 솔직히 고민입니다. 하지만 하루 예배를 위해 큰 건물을 짓는 것은 낭비고 건축 때문에 선교구제비를 줄이는 일은 없어야죠. 대학의 시설을 빌리는 등 지역과 교회 모두 도움이 되는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전주안디옥교회는 교회를 개척한 초대목사와 담임목사의 관계도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목사는 현직 목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멀리 떨어진 경기 수원시에 거주하고 있고 해외 선교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목사는 한국 교회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할 때죠. 변질이 아니고요. 우유가 오래되면 요구르트도 되고 치즈도 될 수 있습니다. 변화 없이 변질되면 우유는 금세 썩죠. 우리가 불편해야 이웃이 편하고, 우리가 가난해야 이웃이 부유해진다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신자들이 자랑하는 교회, 불편해도 더 찾는 교회. 이 깡통교회의 비밀은 외양의 호화로움이 아니라 앞장서 실천하는 ‘가난의 사랑’이다.

전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박진구 목사의 ‘내가 배우고 싶은 목회자’ 김광덕 목사 ▼

김광덕 목사(67·웨슬리 출판문화원 상임이사장)는 양계를 하다 소명을 받아 신학교에 입학한 분이다. 1976년 신학대에서 처음 만나 30여 년을 알고 지냈다. 이분은 안디옥교회를 방문한 뒤 감동받아 교회 버스와 자가용, 목회자 보너스까지 없앴다. 감동받으면 곧바로 실천하는 목회자다. 1998년 교회(과천은파감리교회)와 안정된 생활을 접고 해외 선교에 나섰다. 다른 목회자와 비교하면 10년 이상 일찍 담임목사 직을 접었으니 대단한 용기다. 2000년부터 3년간 필리핀 루손 섬 바기오에서 선교 활동을 했는데 뇌중풍을 세 번이나 맞고 체중이 15kg이나 줄어드는 고통 속에서도 신학대학원을 세우고 의료선교를 펼쳤다. 현재 ‘경영선교전략연구소’를 세워 대표 선교사로도 활동 중인데 선교사들에게 정말 모범이 되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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