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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O2/Life]안지훈의 빈티지 특강

입력 2011-06-18 03:00업데이트 2011-08-2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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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런 식기의 스탬프… 화려한 족보가 빛을 발한다
로열 코펜하겐의 연도별 스탬프 표기법.
테이블웨어(서양식 식기) 수집가들의 꾸준한 증가세를 보면 ‘누군가가 쓰던 그릇’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가족이 아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사용하던 식기를 수집하고 직접 쓰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도 “이거 누가 쓰던 것 아닌가요”였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지나간 기억이 되어 버렸다. 요즘엔 어떤 스토리를 가진 물건인지, 혹은 제품의 브랜드나 제조사가 어떠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다. 때로는 전문가를 자부하는 필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수집가들도 만나게 된다.

○ 그릇 아래 스탬프를 보라

옛 물건들을 수집하다 보면 당연히 그 물건을 둘러싼 이야기나 탄생 배경이 궁금해진다. 그런 정보를 찾는 대표적인 방법에는 수집가를 위한 연감이나 도감에서 비슷한 물건을 찾거나, 물건 자체의 뚜렷한 시대적 스타일을 분석하는 것이 있다.

그렇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물건의 어딘가에서 시간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필자가 핀란드 헬싱키 벼룩시장에서 샀던 나무 필통의 뚜껑 안쪽에는 ‘1932’라는 연도와 ‘사랑하는 아들에게’란 문구가 손 글씨로 쓰여 있었다.

테이블웨어를 수집하는 이들은 습관적으로 제품 바닥에 찍혀 있는 스탬프를 확인한다. 스탬프는 우선 그 제품의 브랜드 이름을 알려준다. 물건에 따라 다르지만 때로는 디자이너의 이름 이니셜이 함께 새겨지기도 한다. 제품 라인의 이름이나 해당 라인의 몇 번째 제품인지를 알려주는 상세한 정보가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탬프의 모양과 내용, 숫자가 제품의 정확한 나이를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많은 테이블웨어 브랜드는 스탬프의 모양 또는 컬러를 매년 조금씩 수정하거나, 일정 기간을 주기로 변형하는 식으로 관리한다. 그 덕분에 백 살이 넘은 제품들을 스탬프 모양만으로 가려낼 수 있다.

노리타케(Noritake)는 일본의 역사 깊은 테이블웨어 브랜드다. 이 회사의 제품 중에는 이니셜 N과 함께 M이 들어 있는 것들이 있다. N은 짐작대로 노리타케의 머리글자다. M은 창업자인 모리무라(Morimura)의 이니셜이다. 이니셜 M은 1953년까지만 사용됐다. 알고 보니 재미있지 않은가?

○ 제작 연도가 나와 있지 않다면?

▲뢰스틀란드의 티투스(Titus) 화병 스탬프. 이 화병은 1963∼1971년 스웨덴 뢰스틀란드에서 활동했던 스타 디자이너 울레 알베리우스(1926∼1993)의 작품이다. 바닥 스탬프를 통해 1966년경에 제작되었다는 힌트와 손으로 채색한 제품이란 정보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스웨덴 회가나스의 스탬프로 1956∼1976년 제작된 제품에 사용됐다.
지금까지 경험해본 스탬프 중 가장 기발했던 게 바로 덴마크 브랜드 로열 코펜하겐의 그것이었다. 로열 코펜하겐 제품은 하나하나 손으로 그려 넣은 짙푸른 패턴 때문에 수집가뿐 아니라 일반 주부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35년 이전에 생산된 제품들은 여느 브랜드 제품과 마찬가지로 스탬프의 모양과 배열을 통해 대강의 제작시기를 추측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이후 생산된 제품들은 현재까지도 모두 동일한 형태의 스탬프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작은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이 똑똑한 브랜드는 스탬프에 찍힌 단어의 특정 알파벳 위나 아래에 작은 막대를 그려 넣음으로써 정확한 제작연도를 표시해 왔다. 예를 들어 ‘COPENHAGEN’의 C 위에 작은 막대가 하나 그려져 있다면, 그것은 1940년에 생산된 제품이다.

H 밑에 막대가 있다면 1967년에 생산된 제품이다. 이렇게 막대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그 어떤 제품이라고 해도 정확하게 언제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비단 테이블웨어뿐만이 아니다. 어떤 대상이든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 작은 비밀을 하나둘 알게 되고 결국에는 큰 지식을 얻을 수 있다.

P.S 오래된 식기를 수집하는 이유는 무척 다양하다. 물론 필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예쁜 그릇을 유리장식장 안에 넣어두고 감상만 하지 않고 실제로 음식을 담아 먹어보고, 차를 따라 마셔보는 것을 좋아한다.

디자인 마케터 helsinki@plus-e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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