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한류 실핏줄’ 흐른다]<3>중앙亞 허브 카자흐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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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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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20만명 ‘한국식 버스카드’ 찍고 불고기-잡채로 잔칫상 차리고 온돌방에서 잠 청한다

#1. “김밥 하나 주세요.” “300텡게(약 2400원)요.”

26일 오전 11시 카자흐스탄의 경제수도 알마티의 가장 큰 재래시장인 ‘질료니 바자르’. 30여 명의 아줌마 상인이 40m 길이 판매대에 나란히 앉아 ‘카레이스키 살라드’(한국음식을 뜻하는 러시아 말)를 팔고 있었다. 김치 고사리무침 장아찌 등 온갖 한국 반찬과 각종 장류, 두부가 즐비하고 김밥도 수북하게 쌓여 있다. 상인 박 볼리나(고려인) 씨는 “손님의 99%가 카자흐스탄인”이라고 말했다.

#2. 지난달 5일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한국의 해’ 개막공연.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큰 공연장으로 3000석의 공연석이 있는 콘서트홀에 5000여 명이 한꺼번에 몰렸다. 1, 2, 3층 복도를 다 채우고도 공연장에 들어오지 못한 2000여 명이 집단 항의하는 과정에서 출입문까지 부서졌다. 이날 최대 스타는 한국 드라마 ‘주몽’의 주인공 탤런트 송일국. 2009년부터 국영방송사 ‘카자흐스탄 TV’를 통해 인기리에 방영된 ‘주몽’ 덕분에 송일국은 이 나라 국민 영웅이 되었다는 말까지 듣고 있다. 주몽과 함께 인기를 끌었던 연속극 ‘꽃보다 남자’에 출연한 김준이 속한 아이돌 그룹 티맥스 공연도 열띤 환호를 받았다. 최대 국영방송국 하바르에서 방영한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주제곡을 부른 서영은의 인기도 대단했다.
시장에서… 버스 타며… 생활 속의 한류 26일 카자흐스탄의 경제수도 알마티 최대 재래시장 안에 자리 잡은 한국 반찬류 전문 판매코너. 김밥 김치 장아찌 등 한국 음식이 풍성하다(위). 알마티에서 운행되는 시내버스 1500여 대에 장착된 한국의 교통카드 시스템. 한국업체가 세운 법인인 ‘베스트카드’ 중앙통제실에서 25일 한 직원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아래).
시장에서… 버스 타며… 생활 속의 한류 26일 카자흐스탄의 경제수도 알마티 최대 재래시장 안에 자리 잡은 한국 반찬류 전문 판매코너. 김밥 김치 장아찌 등 한국 음식이 풍성하다(위). 알마티에서 운행되는 시내버스 1500여 대에 장착된 한국의 교통카드 시스템. 한국업체가 세운 법인인 ‘베스트카드’ 중앙통제실에서 25일 한 직원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아래).
한류 열풍은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 우리의 주요 무역·문화 교역국에서만 불고 있는 게 아니다. 지구촌 방방곡곡 골목골목 스며든 한류 실핏줄의 위력은 중앙아시아의 시골마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 경제·문화의 허브’인 카자흐스탄은 요즘 이 지역 한류 허브로 통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8883달러(2010년)에 달하는 카자흐스탄은 130여 민족에 이르는 민족적 다양성이 특징인데 지리적 위치도 유리해 이곳에서 뜨는 문화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인접국으로 금세 흘러간다. 이런 카자흐스탄에서 요즘 문화계의 화두는 단연 ‘카레야(코리아)’다.

○ 불모지에 뿌리 내린 대중한류


카자흐스탄은 1937년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끌려온 한민족의 후손 고려인들이 있는 나라다. 하지만 고려인은 전체 인구 1601만 명(2009년 인구센서스) 중 0.6%인 10만 명에 불과하다.

한국과의 수교가 소련 해체 이후인 1992년에야 이뤄진 카자흐스탄은 본래 한류 불모지로 통했다. 이슬람교와 러시아정교를 믿고 러시아어 및 카자흐어를 주로 쓰는 나라에 갑자기 몇 년 전부터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소개되면서 ‘한류’ 바람이 불더니 지금은 가히 ‘태풍’ 수준이라 할 만하다. 10대부터 60대까지 ‘한드(한국드라마)’에 열광한다. 카자흐스탄 방송국 ‘채널7’의 비비굴 사장(38·여)은 “한드 중 노인과 연장자를 공경하고 가족을 중시하는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공산당 지배 기간 중 사라진 효도, 장유유서, 군사부일체 문화에 대한 추억을 한드에서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한국문화원(아스타나) 한성래 원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자흐스탄 방송국들이 한국 드라마를 무료로 공급받았는데 이제는 수만 달러씩을 주고 사 가고 있다”고 전했다. 알마티에서 13년 동안 최대의 한인신문 ‘한인일보’를 운영해온 김상욱 사장도 “중앙아시아인들은 한국이 경제 발전을 이룩한 후의 모습만을 안다”며 “따라서 이곳 사람에게 한국 문화는 최첨단 럭셔리 고급문화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 생활 속으로 뿌리내린 음식 한류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외식업계는 한식당 천국이다. 한식당 수가 중식당과 일식당보다 훨씬 많다. 된장찌개 한 그릇이 1000텡게(약 8000원) 이상으로 비싼데도 현지인들이 별미로 즐겨 먹는다.

알마티 최고급 숙소 중 하나인 하이엇호텔은 2년마다 한 번씩 ‘한국 음식 페스티벌’을 열어왔고, 최고급 백화점 ‘람스토르’에도 별도로 ‘카레이스키 살라드’ 매대가 있다. 가정주부 켄지굴 씨(36)는 “내 주변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줄줄이 말할 수 있다”며 “김밥 불고기 잡채 김치찌개 두부찌개 등 한국 음식 중에는 맛있는 게 참 많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세계언어대 박랠리 교수는 “한국 음식이 없으면 제대로 차린 잔칫상으로 보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 서울 닮은 대중교통 시스템


이 나라 ‘생활 한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중교통. 25일 알마티 이엠소바의 평범한 큰길가 3층 건물에는 중앙아시아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고성능의 컴퓨터서버가 여러 대 설치돼 있었다. 현재 알마티 시내버스 1500여 대 모두에 설치된 한국 교통카드 시스템도 이 서버로 운용된다.

알마티에서는 한국에서처럼 교통카드로 매일 20만여 명이 버스를 이용한다. 배차간격, 차량의 위치, 정류장별 승하차 인원 등 갖은 정보가 이 서버로 모인다. 2008년부터 이 시스템을 운용 중인 한국의 중소기업 베스트카드 이종우 법인장은 “현재 인근 4개국 5개 도시와도 이 시스템을 설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한 번 시스템이 깔리면 기술 수출은 물론이고 버스 내 음성광고 등 부가적인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현재 알마티 시정부 측과 교통관제 및 가로등 관제에 대해서도 협의 중”이라고 소개했다.

연말 개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인 카자흐스탄 최초의 지하철인 알마티 메트로에도 한국산이 깔린다. 지하철은 물론이고 7개 지하철역 전체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도 한국 제품이다. 에이시모프 알마티 시장은 3월 말 시험운행 때 “한국 기술로 만든 차량이 모스크바 지하철보다 더 조용하고 안전하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국토 면적(한국의 27배)은 크지만 인구가 적어 정보기술(IT)에 관심이 많다. 2009년 12월 알마티에 개관한 6층 규모의 ICT 센터가 이런 관심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 국제협력단이 기술과 장비를 대고 카자흐스탄 과학기술대가 땅을 내 세운 이 센터는 카자흐스탄 최고이자 최대 규모의 IT 분야 연구 및 교육기관이다. 카자흐스탄 금융결제원은 한국의 금융결제시스템 도입을 위해 한국 측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IT 산업 육성과 함께 심혈을 기울이는 게 농업. 특히 주목받는 곳이 알마티에서 북쪽으로 300여 km 떨어진 우슈토베 시 산하 한 고려인 초기 정착촌. 지난해 하반기 한국 정부는 비닐 파이프 퇴비 성토 농약 종자 등 한국 자재를 들여와 한국 기술로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이 비닐하우스에서 겨울철 섭씨 영하 40도∼영하 20도를 기록하는 혹한에도 특별한 난방 없이 토마토를 키워내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4월 “최첨단 한국 온실에서 사시사철 채소를 재배하는 경험을 보급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정도다.

‘부동산 한류’도 거세다. 카자흐스탄은 골조만을 만든 뒤 분양해 주인이 일일이 인테리어를 하는 주택문화였다. 그런데 한국 건설회사들이 인테리어를 모두 해주고 치안 문제, 중앙 정수시스템, 각종 편의시설 등을 단지 내에서 통째로 해결하면서 주택문화 혁명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 검진-성형관광 넘어 ‘의료 한류’ 붐 ▼


카자흐스탄에서는 요즘 ‘의료 한류’도 거세게 불고 있다. 3월 하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주치의 오라즈 툭티바예프 박사(66)가 한국 세브란스병원에서 전립샘암 수술을 받았을 정도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카자흐스탄의 의료체계는 크게 낙후된 상태. 이런 차에 한국 드라마 등을 통해 한국 의료 수준이 알려지면서 의료 관광 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알마티의 한국 의료 관광을 주선하는 한 여행사 사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자흐스탄 부자들은 병에 걸리면 모두 유럽으로 갔는데 요즘은 한국으로 간다”고 말했다. 건강검진이나 성형수술이 아니라 중병 환자로까지 영역이 넓혀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2, 3년 전부터 한국계 여행사들은 이 나라 일간지 주간지 등에 지속적으로 의료 관광 광고를 싣고 있다.

한국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0년 한국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은 외국인 환자 가운데 국가별 평균 진료비가 가장 높은 나라가 카자흐스탄(1인당 한국 돈으로 378만 원)이었다. 그 뒤를 러시아(297만 원), 몽골(258만 원)이 잇고 있다. 이러다 보니 한국의 병원들은 러시아어 통역을 별도로 두는 곳도 늘고 있다.

카자흐스탄 환자들은 아예 원하는 병원을 직접 지정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만큼 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게 한국의 병원이 널리 알려졌고 필요한 경우 충분한 사전조사를 한다는 소리다.

한국 의료계도 이런 분위기를 적극 공략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최근 서울대병원 등 의료기관들과 함께 카자흐스탄 주요 도시에서 한국 의료 홍보회와 병원 건립 연관산업 로드쇼 등을 열었다. 고려대의료원 등도 적극적으로 카자흐스탄 진출을 꾀하고 있다.

대형 종합병원뿐만이 아니다. 경기 부천의 심장병 전문 병원인 세종병원은 알마티에 ‘심장병 전문 병원’을 내는 계획이 성사 단계에 있다. 약 200병상의 심장전문센터를 개원하는 것이다. 알마티의 한 투자자가 세종병원을 찾아 먼저 연락해 합작 투자를 제의했다고 한다. 한국 의료의 명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알마티·아스타나(카자흐스탄) 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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