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는 유학의 핵심 개념인 인(仁)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저자인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46)는 공자 이전부터 맹자, 왕양명, 근대의 캉유웨이(康有爲)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한국 유학자들의 인 사상을 11단계로 정리했다.
신 교수는 우선 인의 정의부터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인을 단순히 ‘어질다’로 풀이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사람답다’로 바꿔야 합니다. 인을 ‘어질다’로 풀이하면 너무 복합적인 뜻을 갖게 돼 명확한 학문적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런 점에서 인을 영어로는 ‘휴머니티(humanity)’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사람다움’이란 역사의 단계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원시시대에는 인간이 자연에 종속돼 있었지만 현대인은 자연을 이용하며 자유와 평등을 누린다. 사회적 관계의 양상도 시대마다 다르다.
인이란 글자가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700년경의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경에는 인이 두 번 나온다. 두 번 모두 주위의 요란하게 치장한 귀족의 행차를 묘사한 부분에서다. 신 교수는 “공자 이전의 인은 보통 사람이 아닌 높은 신분의 인물과 관련 있다”고 해석한다.
공자에 이르러 인은 치자(治者)의 덕목으로 등장한다. 약육강식의 춘추시대에서 치자가 절제와 지혜를 발휘해 통치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한(漢)대에 이르면 기(氣)와 음양사상이 모든 분야에서 번성한다. 동중서는 유학 사상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자연학 분야를 당시 음양오행의 기 철학으로 보완했다. 기 철학을 통해 인은 자연과 만난다.
“동중서는 인의 근원을 하늘과 연결시켰어요. 이로써 인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넘어 하늘과 사람의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론을 넘어 인의 실천을 강조한 주희를 지나 청나라 때 완원과 조선 후기 정약용은 인의 한층 명확한 실천 방법을 모색한다. 정약용은 ‘도덕적 규범은 구체적인 인간관계에서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바로 그 점에서 정약용의 인 사상이 현대에 가장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현대사회는 계약으로 얽힌 사회인데, 만물일체만 주장하는 형이상학적 주장은 보편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죠.”
신 교수는 11단계까지 정리한 인의 12번째 단계 개념을 정립한다면 “상생의 삶을 꾸리는 무한 원동력”이라고 정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대는 개인의 구원에만 몰두하고 있지만 사회적 구원을 통한 개인의 구원을 꿈꾸는 것이 인 사상입니다. 지금 뜨거운 이슈인 복지 문제도, 구원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임무로 보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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