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전문가들의 말 말 말… “100% 믿어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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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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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
데이비드 프리드먼 지음·안종희 옮김 412쪽·1만5000원·지식갤러리

매일같이 우리는 신문이나 TV를 통해 숱한 전문가들의 조언을 접한다. 이런저런 음식이 암 예방에 좋다, 심폐소생술에서 인공호흡은 중요하지 않고 환자의 가슴을 펌프질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다른 전문가들이 나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어떤 음식이 암에 좋다는 말은 아무런 근거가 없고, 흉부압박식 심폐소생술보다 복부압박식이 좋다고 한다. 또 다른 전문가는 심폐소생술이 일반인이 시행하기에는 너무 위험해서 차라리 하지 말라고 권한다.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쟁점을 둘러싸고도 전문가들은 상반된 견해를 내놓는다. 예를 들어 아직도 논란이 끝나지 않은 4대강 사업의 효과와 부작용을 둘러싸고 최고의 전문가라고 공인된 학자들이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곤 한다.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과학과 기업 분야 저술가인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날로 복잡해지는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지만 정작 전문가들의 조언이란 것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엉터리인지를 생생한 실례와 함께 고발하고 있다. 흔히 가장 객관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과학 연구의 사례를 저자는 비중 있게 다루고 있지만,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의료와 건강, 주식, 경제, 미식축구, 영화, 광고 등의 다양한 분야까지 두루 언급한다.

김동광 고려대 과학기술학 연구소 연구교수(오른쪽)
김동광 고려대 과학기술학 연구소 연구교수(오른쪽)
사람들은 대개 살을 빼는 데 특효가 있다며 다이어트 방법을 선전하는 이른바 대중 전문가들의 조언은 엉터리가 많을 수 있지만, 권위 있는 과학자들이 발표한 내용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통념을 불식시킨다. 언론을 타거나 인터넷 등에서 입소문으로 삽시간에 전문가 칭호를 얻은 대중 전문가든 관련 박사 학위나 교수 등의 지위로 든든하게 무장한 과학자든, 오류를 저지르거나 이해관계에 휘둘리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가령 사람의 유전자를 해독하는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유전자 연구로 암과 같은 불치병 치료를 앞당길 것이라는 믿음을 널리 유포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완성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저자와 인터뷰한 워싱턴대의 암 연구자는 성인 암 치료에서 1950년대 이후 생존율은 거의 변화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연구 초기에는 종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적을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돌연변이 유전자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 외에도 과학자들은 흔히 연구를 조작하고, 자신들에게 돈을 준 기업의 제품이 문제가 있어도 은폐하거나 거짓으로 안전성을 장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전문가들만의 문제인가. 물론 일차적으로 전문가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날로 사회가 복잡해지고 과거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세상에는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대중은 확실한 처방을 내놓으라고 전문가들을 채근해댄다. 사람들은 단순한 조언을 좋아한다. 조금만 복잡한 설명을 할라치면 말을 자르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하고 다그친다. 저자는 사람들이 전문가 조언에서 기대하는 특징을 명쾌함, 확실성, 보편성, 낙관성, 실행가능성, 파격적인 주장 등으로 요약한다. 현실은 다양한 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만 명쾌한 답을 확실하게 내놓으라는 강박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전문가들이 이런 요구에 휘둘리기 쉽다. 일반인들도 전문가들의 주장이 제각각이라는 것을 알면서 어떤 음식이나 치료법이 좋다는 말에 쉽게 현혹된다. 어떻게든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있는가. 마지막 장에서 이 책은 올바른 전문가 조언과 사이비의 특징을 몇 가지로 분류하면서 독자들에게 옥석을 가려낼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그 핵심은 앞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원하는 전문가 조언의 특징들을 조심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확실하다고 장담하거나 명쾌한 전문가 조언은 의심할 필요가 있다. 요즈음 일본 원전에서 흘러나오는 방사성 물질에 대해 우리나라 전문가들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장담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이유도 그 언저리에 있을 듯하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이런 이야기만으로는 미진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결국 개인들이 각자 알아서 어떤 전문가의 조언이 받아들일 만한지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 언제 중구난방인 전문가들의 조언을 일일이 비교하고 분석한단 말인가.

저자가 여기까지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펀토비치와 라베츠 같은 과학기술학자들은 오늘날 광우병, 유전자변형작물(GMO), 신종 플루 등 과거에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전혀 새로운(emerging)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전통적인 전문가나 전문지식이 대응능력을 상실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문성을 확장해서 이해당사자인 시민들을 적극 참여시켜 불확실성을 줄이고 신뢰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문성의 재구성’ 또는 ‘전문성의 민주화’ 주장이다. 이처럼 이 책은 전문가 조언이 위기에 처해 있는 시대에 새로운 전문성을 세워나가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김동광 고려대 과학기술학 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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