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건축을 말한다]<8>이민-손진의 유치원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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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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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 키우는 유치원 ‘유치한 공간’ 안되게”
교실-식당 등 구분 없애니 아이들 생각도 유연해져

유치원이 건축의 주제가 될 수 있을까.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이손건축 사무실에서 만난 이민(56)과 손진 대표(51)는 “그렇다”가 아니라 “그래야 한다”고 대답했다. 2002년부터 내놓기 시작한 4개의 유치원 연작으로 주목받은 두 사람은 폭신한 매트리스나 알록달록한 벽면 등 익숙하게 알려진 유치원의 전형적 요소를 답습하지 않았다.

“유치원은 아이들의 순수한 지적 감수성을 성장시킬 배경이 되지만 한국에서는 이상하게도 그 중요성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유치원 공간’을 ‘유치한 공간’으로 오해하는 것 같아요. 유치원이야말로 공간 디자인이 인간의 지각과 감성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곳인데 말이죠.”

20여 년 전 이탈리아 유학 중에 만나 의기투합한 이들 두 사람이 유치원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9년. 동아일보에 실린 ‘이탈리아의 유치원 교육’ 기사가 계기였다. 10년 가까이 머물렀던 이탈리아에 관한 소식이라 유심히 읽던 이민 대표는 레조에밀리아 시(市)의 창의적 유아교육에 관한 이야기에 호기심을 느꼈다.

“기사에 도움말을 준 오문자 전 계명대 겸임교수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유아교육 관련업체 종사자가 아니라 건축가라고 하니까 의아해하면서도 반가워하더군요. 1년쯤 뒤 그분이 전화를 걸어오더니 경기 안양시 천사유치원 건축주를 소개해 줬습니다. 그때부터 소문을 타고 여기저기서 유치원 일감이 이어졌죠.”
손택균 기자
손택균 기자

하나의 작은 건물이 도시의 일정 지역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의 범주와 가능성 찾기에 열중하던 차에 유치원은 흥미로운 공부거리였다. 유학 때 알지 못했던 유치원 건축을 살펴보기 위해 두 사람은 다시 이탈리아를 찾았다. 아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울타리’ 역할의 한국 유치원과 달리 사회를 투영하는 ‘삼투막’ 역할을 하는 이탈리아 유치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유치원은 미리 정한 프로그램에 따라 장소와 시간을 분배하고 아이들을 움직이죠. 이탈리아의 유치원에는 공간 구획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식당 의자가 망가졌다면 그것을 고치고 개조하는 방법을 식당에서 하나의 교육 프로젝트로 만들어요. 교실을 따로 둘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일상의 과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독립된 개체로 자라도록 돕는 거죠.”

2008년 한국건축가협회상과 김수근문화상을 받은 경북 경산시 운문유치원은 이런 특징을 한국에서 구현해 보려 한 작업이다. 다섯 개의 직육면체 공간을 묶어낸 중앙 로비는 경계와 형태가 뚜렷하지 않다.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을 딱딱 끊어내지 않고 유연하게 흐르도록 만든 것. 영역의 경계가 모호한 사회의 체험을 아이들에게 이어주는 매개 공간이다.

작업을 진행하며 얻어낸 유치원 공간에 대한 해법도 한 가지에 머물지 않았다. 천사유치원에서 시작해 운문유치원과 경기 용인시 아란유치원, 경기 화성시 동탄유치원으로 이어진 유치원 설계의 결과물은 특징과 성격이 제각각이다. 공조 시스템을 노출해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은 운문유치원의 천장 마감 방식도 다른 작업에서는 반복하지 않았다.

“밤새도록 고민해서 겨우 찾아냈다고 믿었던 해답을 하룻밤 자고 일어나서 다시 살펴보면 형편없어 보일 때가 있잖아요. 둘이 나눠 보강하고 견제하는 협업은 그런 시행착오에 허비하는 시간을 줄여줍니다. 물론 두 사람이 궁극적으로 길게 바라보는 건축의 방향이 달랐다면 벌써 헤어졌겠죠.”

작업 중 두 사람의 대화는 거의 모델 습작을 통해 이뤄진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대해 해결 방향을 제안한 모델을 이 대표가 만들어 놓으면 다음 날쯤 손 대표가 그 옆에 잠자코 자신의 모델을 나란히 놓아두는 식이다. 각각의 장점을 합치기보다는 비교 과정을 통해 단점을 없애는 데 주력한다.

“건축가는 공간을 제안하는 사람입니다. 교육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죠. 사설이 주도하는 한국 유아교육 시스템은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유치원의 장점을 그대로 따를 수 없습니다. 건축 디자인조차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보면 솔직히 가끔 씁쓸해요. 그렇다고 작업을 멈출 수는 없죠. 건축가는 오로지 공간을 통해 주장하는 것이니까요.”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손진 대표는…

△1986 년 홍익대 건축학과 졸업 △199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건축대 졸업 △1993∼95년 나폴리 프란체스코 베네치아 스튜디오 근무 △1997년 이손건축 공동대표 △2008년 한국건축가협회상, 김수근문화상(경북 경산시 운문유치원·이손건축)

○ 이민 대표는…

△1978년 충남대 건축학과 졸업

△1984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

△1990년 이탈리아 로마대 건축대학원 석사 △1992∼95년 나폴리 프란체스코 베네치아 스튜디오 근무 △1997년 이손건축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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