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29>경제개발의 길목에서

  • 입력 2009년 5월 4일 02시 55분


1976년 5월 프랑스 파리 방문 도중 열린 오찬 모임에서 현지 경제계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
1976년 5월 프랑스 파리 방문 도중 열린 오찬 모임에서 현지 경제계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
<29> 경제외교-미국과 프랑스에서

4차 5개년계획 100억달러 필요

경제사절단 이끌고 美-유럽 순방

차관공여-원전 건설 협력 이끌어내

1973년 10월 제1차 석유파동에 직면해 원자력발전이 도마에 올랐는데 원자력발전소 하나를 건설하자면 10억 달러 내외의 막대한 비용이 든다. 원자력발전소 건설뿐만 아니라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1981년)을 추진하자면 대략 100억 달러의 외자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1976년 5월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미국 및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 16일간의 여정으로 먼저 워싱턴으로 향했는데 다행히 내 순방일지가 남아 있기에 경제외교의 실상을 전해 두고자 한다.

13일 미 얼 버츠 농무장관과 40분간 요담한 결과 1977회계연도 중 원면과 소맥 도입용으로 150만 달러 상당의 상품차관(CCC)을 공여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오후에 로버트 맥나마라 세계은행 총재를 방문해 한 시간 동안 요담한 결과 영산강 제2단계 개발과 미호천 지역개발, 한국산업은행에 대한 농업차관 등 8개 사업을 위해 1977년 중 4억 달러의 차관 공여가 가능하다는 확답을 받았다. 14일에는 미 국무부 찰스 로빈슨 차관, 필립 하비브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전 주한 미국대사), 대니얼 파커 미국 국제개발처장 등과 면담해 미국의 ‘200마일 경제수역’ 설정과 관련된 원양어업 협력 문제를 비롯해 양국 간의 경제협력에 관해 협의했다.

3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5월 15일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18일 장피에르 푸르카드 경제재무장관과 75분간 회담한 끝에 프랑스가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및 제철 부문의 건설사업을 적극 지원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를 위해 2중과세 방지 협정과 투자보장 쌍무협정을 체결하기로 하고 9월에 프랑스 당국 실무자가 서울에 오기로 합의했다. 다음에 자크 시라크 프랑스 기업인연합회 회장과 면담한 후 원자력발전소 건설회사인 프라마톰사의 알베르 부샬레 씨 등 중역들과 면담해 2개 원자력발전소 건설계획을 위시해 제4차 5개년 계획에 필요한 자본, 기술협력을 요청하고 그들의 원자력발전소 입찰 계획을 청취했다. 이 프라마톰사와 우리 정부 사이에는 한 가지 난관에 봉착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 회에 이야기하기로 한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이 나라 실업계와 금융계 인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한불협회 회장이었던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주선으로 프랑스 대통령의 동생이자 무역증진협회 회장인 올리비에 지스카르 데스탱 씨와 재계 인사들을 만나 오찬 연설을 통해 제4차 5개년 계획을 설명하고 그들의 협력을 당부했다.

며칠 후인 2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회담에서 2개 발전소의 세부적인 건설 계획이 논의됐고 내가 프랑스 사업가들에게 일련의 구매 리스트를 제시했으며 프랑스는 한국의 제4차 5개년 계획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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