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테마 에세이]이사<4>신혜영

  • 입력 2009년 9월 25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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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마다 짐 꾸리기

색다른 이사에 관해 말해 보련다. 사람의 이사가 아닌 미술작품의 이사를 말하는 것이다. 초기 큐레이터로 근무하던 시절, 내가 일하던 전시장에는 무려 열흘에 한 번씩 새로운 작품이 이사를 다녔다. 사람의 이사주기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체류기간이었는데 727m²(220평)나 되는 공간에 한 번씩 작품이 들락날락할 때면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미술작품은 비싼 가구나 가전제품 못지않은 가격이어서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그래서 이삿짐 싣는 용달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옮겨야 한다. 작품은 운행 중 진동을 최소화하고 박스처럼 생긴 소위 미술품 전문용 탑차라 불리는 트럭으로 운반한다.

운송을 담당하는 전문인력들은 미술계에서는 나름대로 마당발일 수밖에 없다. 웬만한 전시장은 수시로 드나들고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한 미술가들의 작업실도 직접 다니게 되니 말이다. 경력이 10년 이상 되는 베테랑은 모 미술가의 이름만 말하면 작업실 위치며 작품경향의 변화까지 훤히 꿰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다루기 까다로운 작품의 운반과 설치까지 척척 해결하기도 한다.

누구든 이사를 통해 정든 곳에 대한 시원섭섭함과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을 경험한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맞고 있지만 그 시절 열흘에 한 번씩 빈번히 전시장 주인이 바뀌던 때 나는 반대의 경험을 한 것 같다. 사람으로서 이사를 다니는 주체가 아닌 기존 주인을 보내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는 집의 입장이 되었던 것 같다.

전시장에서 한껏 뽐내고 있던 작품들을 보낼 때마다 예외 없이 마음이 허전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정말 아름다운 작품에 정성을 기울이며 배치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과 기쁨을 함께한 후 떠나보내는 날이 되면 참으로 서운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곧 지난 인연을 툴툴 털어 버리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채비를 하며 마음도, 전시장도 정돈하게 된다. 말없는 우리의 보금자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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