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테마 에세이]미니스커트<1>김숨

  • 입력 2009년 4월 3일 03시 02분


여자는 혁명을 꿈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터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미니스커트를 발명한 영국의 의상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한 말이다. 1960년 과감히 발명되어 도전과 혁명, 모험으로까지 칭송되며 여성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니스커트.

그렇지만 유행이 되는 순간, 도전은 혁명은 모험은 늘 봐오던 TV광고처럼 익숙하고 저속하며 상업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불황일 때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는 속설을 입증하듯 올해도 미니스커트가 유행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어쩌다 옷을 사러 가게에 가면 비슷비슷한 디자인의, 아슬아슬하도록 짤따란 치마들이 줄줄이 걸려 있다.

새롬이라는 친구가 있다. 키가 훌쩍하고 얼굴도 예쁜, 무엇보다 두 다리가 유난히 하얗고 미끈한 친구였다.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헤어졌는데 4년이란 시간을 훌쩍 건너뛴 어느 날, 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날 만나고 싶다고…. 내 친구들 중 누구보다 상큼발랄한 대학교 신입생으로 변모해 있을 친구를 기대하며 만나러 갔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저만치서 걸어오는 친구의 모습은 어딘가 불안정하고, 금방이라도 픽 쓰러질 듯 여위어 있었다. 게다가 두 다리까지 절룩절룩 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친구는 고교 3학년 때 학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그때 두 다리를 심하게 다치는 바람에, 무릎뿐 아니라 다리 곳곳에 철심을 박아 넣어야 했다고. 철심을 박아 넣어서인가. 친구의 두 다리는 기형적으로 야위고 뒤틀려 있었다. 게다가 그 사고 후 친구는 휴학을 하고 집과 병원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로부터 서너 달쯤 뒤 그 친구가 우리 집 근처 공원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쇠젓가락처럼 마르고 뒤틀린 허벅지와 무릎을 고스란히 미니스커트 밑으로 드러낸 채 환히 웃으며 날 맞는 것이…….

친구는 어쩌면 그때 미처 회복되지 않은, 찬란해야 할 스무 살을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게 한, 철심이 곳곳에 박힌, 자신의 ‘몸’에 대한 도전과 혁명과 모험으로 미니스커트를 입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몸에 도전함으로써, 어떻게든 몸을 되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껏 나는 한 번도 미니스커트를 입어본 적이 없다. 감추기를, 숨기를 좋아하는 내 성격 탓이 클 것이다. 아마도 나는 평생 미니스커트를 입어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새롬이라는 친구가 있어 ‘미니스커트’에 대해 별 여한이 없을 듯하다.

언젠가 그 친구를 다시 만나면, 미니스커트를 입은 세상 모든 여자들 중에 그때의 네가 가장 혁명적이고 아름다웠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꼭!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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