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이 연구]<12>국내 첫 의학史연구소 설립 여인석 교수

  • 입력 2008년 12월 29일 02시 58분


“일제강점기 한의학 위축되지 않았다”

“의학사(醫學史)는 몸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해 온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학사 연구는 우리 사회가 몸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뤄 왔는지 성찰하는 작업입니다.”

여인석(43·사진) 연세대 의학사연구소장은 학문으로서 의학사를 연구하는 길을 선택한 학자다. 연세대 의사학과 교수인 그는 5월 국내 처음으로 의학사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는 현 의료체계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분석하는 데 매달리고 있다. 그 첫 작업이 ‘일제 식민지 시기 한의학의 근대화’에 대한 연구.

그는 일제강점기 서양의학이 도입되면서 한의학이 위축됐다는 점을 반박한다. 당시는 한의학이 서양의학과 공존하는 현재의 틀을 갖춰 가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1913년 조선총독부가 반포한 전통의료인 면허제도인 ‘의생규칙(醫生規則)’에 대한 분석이 대표적이다. 의생은 전통의료인에게 붙여진 이름. 그는 의생규칙을 한의학 탄압의 사례로 보는 기존 시각을 비판한다.

그는 “일본이 메이지유신과 더불어 자국의 전통의료를 국가 의료 체계에서 배제한 것과 달리 식민지 조선에서는 전통의료인을 제한적인 범위에서나마 국가 의료 체계에 편입시켰다”고 말한다. 당시 의료 인력이 부족한 측면이 있었지만 그 과정은 전통의료가 근대적 체계에 편입되는 것이었다.

의사를 꿈꾸었던 그가 다른 길을 선택한 건 은사였던 이성락(전 가천의과대 총장) 당시 연세대 의대 교수의 조언 덕분이다. 1990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던 그에게 은사는 “의대를 졸업했다고 반드시 의사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며 의학사라는 분야를 소개했다.

하지만 의학사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없어 그는 대학원에서 기초의학을 전공해 1998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파리7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3월 ‘서양 고대의학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모교 의사학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한의학, 식민지를 앓다’(아카넷) 등 10여 권의 책과 20여 편의 의학사 논문을 냈다.

그는 한국의 근대 한의학에 이어 근대 서양의학과 광복 이후 의학의 변모를 조망할 계획이다. 그는 “우리 의료체계의 역사적인 변화를 분석하는 일은 곧 현재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라며 “사회의 병도 원인을 알아야 치료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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