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이 연구]<3>아랍전문가 엄익란 명지대 교수

  • 입력 2008년 10월 20일 02시 56분


“신세대 무슬림 소비패턴 서구화

우리기업 도움되게 실증적 분석”

“한국의 수출 시장으로 떠오르는 아랍 사회의 소비문화 핵심에는 신세대가 있습니다. 샤넬과 루이비통의 명품 스카프를 히잡(hijab)으로 두르는 그들에 대한 연구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엄익란(34·사진)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연구교수는 아랍 신세대를 연구하는 한국의 젊은 학자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분야는 서구화와 토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아랍 신세대의 소비문화.

“이슬람 여성이 입는 검은 옷인 아바야는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특징이지만 요즘 신세대들이 타이트하게 입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몸에 달라붙는 제품이 나와요. 이슬람이 서구화된 것이지요. 반면 휴대전화는 이슬람의 기도시간과 방향, 이슬람력과 영어판 코란을 입력한 제품이 인기를 끕니다. 서구적인 것이 토착화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이를 ‘쿨(cool) 이슬람’ 현상이라 표현했다. ‘쿨’은 아랍에서 서구적인 것의 의미로 읽힌다고 했다.

엄 교수는 영국 엑스터대 유학 시절 아랍의 결혼문화를 연구했고 2004년 2월 ‘세계화가 이집트 카이로의 결혼패턴에 미친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중동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랍 사회의 소비문화를 잘 보여주는 의례가 ‘소비행위가 집약돼 있는’ 결혼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혼을 연구하다 보니 결혼의 주인공인 신세대가 눈에 들어왔다. 2001년 9월부터 2002년 8월까지 카이로에서 학위 논문을 위해 현지조사를 수행할 때였다. 기성세대는 경제적 능력이 있어도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여겼지만 신세대는 돈을 쓰는 것 자체를 특권의식으로 여길 정도로 인식차가 컸다.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아랍인은 체면 유지와 평판을 위해 소비를 합니다만 신세대의 소비는 기성세대와 구분될 정도로 그 정도가 심했습니다.” 그가 카이로에서 만난 신세대들은 혼수와 같은 고가의 물건들을 사기 위해 ‘체면’을 내세워 부모를 설득하고 소비를 이끌어낸다고 한다.

한국 학계의 아랍 연구가 정치와 종교체계, 역사, 문학 등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는 점에서 아랍의 신세대, 특히 그들의 소비문화 연구는 새로운 개척분야다.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한 엑스터대 나디야 알알리 교수는 “문화나 종교적 차원이 아닌 구매력의 관점에서 변화하는 아랍 사회를 분석한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며 연구를 독려했다고 한다.

논문을 준비하며 엄 교수가 수행한 현지조사는 영국 유학시절 만난 아랍 친구를 통해 다른 친구를 소개받고 다시 가지치기를 하는 ‘스노볼 샘플링’ 방식이었다. 16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자택에서 만난 엄 교수는 ‘중동 연구의 출발은 인맥’이라고 잘라 말했다.

“어느 사회든 어느 정도의 현지조사에서 인맥이 필요하지만 아랍 사회는 인맥이 아니면 거의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아요. 예를 들어 아랍의 금융에 대해 알고 싶다면 금융업을 장악한 가문의 왕족을 소개받아야 합니다. 구매력이 있는 신세대의 소비문화를 연구하는 것도 마찬가지 방법일 수밖에 없지요.”

엄 교수는 최근 한국학술진흥재단의 ‘2008년 학술연구교수 프로젝트’의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 그가 기획한 프로젝트는 2008년 9월∼2011년 8월에 아랍 중·상류층의 소비문화를 연구하는 내용.

그는 “두바이로 대표되는 쇼핑몰 유행 현상의 배경에서부터 신세대를 중심으로 아랍인의 소비를 결정하는 기제와 아랍 시장에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까지 분석할 계획”이라며 “학문적인 성과로 그치지 않고 우리 기업의 경제활동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 수준의 실용적인 연구를 할 것”이라고 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