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책향기]‘목에 현상금’ 두 작가 나란히 신작

  • 입력 2008년 5월 31일 02시 52분


루슈디 “나는 작가” 알리 “난 투사”

살만 루슈디(61)와 아얀 히르시 알리(39)는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우선 두 사람은 모두 작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두드러지면서 무시무시한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의 목에 현상금이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각각 세인의 이목을 피해 숨어 지낸다.

인도 출신의 루슈디가 1988년 소설 ‘악마의 시’를 발표하자 이슬람권의 과격 세력은 그에게 ‘처형’ 선고를 내리고 현상금을 걸었다. 예언자 마호메트를 불경스럽게 묘사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알리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소말리아 출신으로 네덜란드에 살던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슬람 문화를 비판적으로 묘사한 시나리오 ‘복종’을 써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표적이 됐다. 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든 네덜란드 영화감독 테오 반 고흐는 2004년 11월 암살당했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은 작가지만 작품 외적인 일로 늘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런 그들이 최근 나란히 신작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세상에 다시 알렸다.

루슈디가 쓴 책은 ‘플로렌스의 여마법사(Enchantress of Florence)’. 16세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 판타지 소설이다. 플로렌스 출신의 한 남자가 인도 무굴제국에 도착한다. 그는 자신이 3대 황제인 아크바르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마법과 전쟁이 얽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신화와 환상, 현실을 버무리는 루슈디 특유의 작법이 드러나는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좋으냐 나쁘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평론가 존 서덜랜드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쓴 서평에서 “그의 최고작 가운데 하나”라고 호평을 한 반면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역사와 전설을 이상하게 뒤섞은 작품”이라며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알리가 쓴 책은 어린이용 책인 ‘아단과 에바(Adan and Eva)’다. 어린이용 책이지만 주제는 무겁다. 무슬림 집안의 소년 아단은 아버지에게 매를 맞으며 산다. 에바는 부유한 유대인 가문의 딸.

에바는 아단을 따라 코란을 가르치는 학교를 구경하고, 아단은 에바가 준 유대인 음식과 포도주를 맛본다. 둘은 다른 종교에 대한 선입관을 이런 식으로 극복해나간다. 그러나 양가 어른들이 이 사실을 알고 아단과 에바를 각각 모로코와 스위스로 보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알리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은 학교에서 시작하는데 우리는 어른들의 선입관이 만든 세상에 살고 있다”고 이 책을 쓴 의도를 설명했다.

새 책에서 엿보이는 루슈디와 알리의 의도는 분명하다. 루슈디는 최근 한 모임에서 “앞으로 글쓰기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로서의 본모습을 되찾겠다는 뜻이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알리는 ‘작가’라기보다는 여전히 ‘투사’다. 그래서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또다시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아동을 학대하는 무슬림 부모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이슬람권으로부터 다시 한 번 반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의 글쓰기가 이처럼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20년과 4년이라는 숨어 지낸 기간의 차이 때문은 아닐까.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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