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링크]패션의 두 얼굴… 욕망과 시대

  • 입력 2009년 6월 6일 02시 56분


◇ 20세기 패션 아이콘/제르다 북스바움 엮음·금기숙 남후남 박현신 허정선 옮김/380쪽·2만2000원·미술문화

옷은 ‘제2의 피부’라고 불린다. 단순히 몸을 한 번 더 감싸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옷이 사람에게 밀착돼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옷은 신체보호의 기능을 넘어서 개인의 욕망과 이상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나아가 패션은 사회의 영향을 받고 패션이 사회현상을 만들기도 한다. 스커트 길이는 여성 해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불황에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 ‘경기가 나빠지면 립스틱 소비가 늘어난다’ 등 패션과 사회현상을 연관짓는 속설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크리크크리놀린은 1915년에서 1917년 초까지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던 드레스와 슈트의 실루엣을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물자가 부족했는데도 사람들은 부풀린 종 모양의 스커트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양의 옷감을 사용했다. 이 스커트처럼 여성적인 실루엣이 유행했던 이유는 전쟁으로 불안한 시대에 안정되고 조화로운 과거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허리를 꽉 조이고 풍성한 스커트를 입는 X자형 실루엣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중반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뉴룩’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유행시킨다.

“리틀 블랙 드레스는 감상적인 성격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을 표현하며 위엄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을, 다양한 색채의 인간 집단과 섞이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개인주의를 표현한다.”

‘리틀 블랙 드레스’는 패션 잡지에서 엘비디(LBD·Little Black Dress)라는 줄임말로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패션 아이템 중 하나다. 코코 샤넬은 1926년 무릎 길이에 단순한 실루엣으로 실용성을 극대화하고 하녀가 입는 색깔이던 검은색을 과감하게 사용해 리틀 블랙 드레스를 탄생시켰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던 시기에 편하고 세련된 옷을 원하던 여성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미국판 보그는 “고급 취향을 가진 모든 여성의 유니폼”이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샤넬이 리틀 블랙 드레스에 담은 ‘관습 타파’의 정신은 이후 패션과 그 패션의 옷을 입는 여성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복식사학자 바버라 빈켄은 “20세기 말에 이르러 패션은 예술이 이루고자 했던 것을 성취했다. 그것은 패션에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파워슈트, 펑크 등 시대를 풍미했던 패션은 모두 당시 사회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패션디자이너들은 당대를 사는 사람들의 욕망과 이상을 옷에 담으며 유명해질 수 있었다. 책은 키워드 80개를 통해 20세기 패션의 역사 속 20세기 시대정신을 담는다.

‘패션의 역사 1, 2’(한길아트)는 독일의 저명한 문화사가 막스 폰뵌이 중세부터 20세기 초까지 패션의 역사를 집대성한 8권짜리 ‘패션’을 2권으로 요약한 책이다. ‘한국 패션 100년’(미술문화)은 미 군수품으로 만든 낙하산 블라우스, 1970, 80년대 판탈롱과 통기타 패션 등 한국 패션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스타일 중독자들’(애플트리태일즈)은 패션업계의 마케팅 전략과 뒷얘기를 담은 책이다. 명품 브랜드가 앞 다퉈 섹슈얼한 광고를 내세우는 이유, 사진작가나 패션모델의 역할 등을 통해 패션이 유행이 되고 사회현상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패션의 유혹’(청년사)은 ‘우리가 왜 패션 의상을 입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젠더, 문화인류학, 기호론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사회현상으로서의 패션을 살펴본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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