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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소통]서울 동산방 화랑 조선후기 회화전

입력 2011-03-15 03:00업데이트 2011-03-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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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의 운치, 오래도록 머무는 마음
조선 중기의 화가 탄은 이정의 ‘니금세죽’. 한 폭의 대나무는 잎 이 위로 뻗어가는 모습을, 다른 한 폭에선 밤비를 맞아 아래로 처 진 댓잎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조선 후기의 작품을 조망하고 있 으나 임진왜란 이전 작품이 워낙 귀한 탓에 전시에 포함됐다.(위쪽), 이수민의 ‘강선독조’. 세부 묘사 를 생략한 소박한 그림에 맑은 기 운이 흘러넘친다. 동산방 화랑 제공(아래쪽)
검은 바탕에 금빛으로 빛나는 대나무 그림이 쌍을 이루고 있다. 둘은 능숙한 운필에서 닮은꼴이나 댓잎을 살펴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한쪽에는 막 세상에 나온 듯 어린 댓잎이 위로 힘차게 뻗어 있고, 다른 쪽에선 한밤에 비를 맞은 듯 잎이 땅을 향해 있다. 대나무 그림으로 동양회화사에서 당대 최고로 꼽혔던 탄은 이정(1541∼1622)의 ‘니금세죽(泥金細竹)’이다. 그 맥을 잇는 유덕장(1675∼1756)의 ‘설죽도’에선 서정적 운치가, 신위(1769∼1847)의 ‘묵죽도’에선 능숙한 필선이 돋보인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동산방 화랑이 15∼28일 마련한 ‘옛 그림에의 향수’전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고서화를 만날 기회다. 겸재 정선을 비롯해 심사정 윤두서 등 조선시대 후기 회화사를 빛낸 33인의 역량이 응축된 산수 인물 풍속 화조 사군자 등과 추사의 글씨 등 48점을 선보인다. 화랑이 소장한 작품과 컬렉터에게 빌려온 작품으로 구성했다.

도자기에 비해 보존이 쉽지 않아 숫자가 한정된 서화를 한데 모은 데다 대부분 미공개작이라 돋보인다. 도록에 해설을 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번 전시는 회화사 몇 편의 논문보다 더 많은 미술사적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만큼 기대가 크다”고 소개했다. 눈 밝은 미술애호가에겐 그만큼 반가운 전시다. 02-733-5877

○ 옛 그림, 마음속에 머물다

1층에는 대작이, 2층엔 알찬 소품이 즐비해 보는 이의 눈이 호사를 한다. 큰 그림에는 기운찬 필치와 호방한 기운이, 소품에는 ‘작은 화면을 크게 쓰는’ 선인의 지혜가 담겨 있다. 이 중 초원 이수민(蕉園 李壽民·1783∼1839)과 이인문(李寅文·1745∼1821)의 수묵 풍경은 작지만 짙은 정감과 문기(文氣)를 풍기는 수작이다. 이수민의 ‘강선독조(江船獨釣)’의 경우 밤에 나온 어부를 그렸는데 아련하고 소슬한 분위기가 스며 있다. 이인문의 ‘수간모옥(數間茅屋)’은 연한 먹으로 나무와 집을 간결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해맑은 기운이 살아 있다. 조촐한 아취가 스며든 두 작품은 문인화의 기품과 격조를 오롯이 담고 있다.

서울 북악산 정상 부근에 솟은 바위를 그린 정선의 ‘부아암(負兒巖)’도 인상적이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나누고 바위를 과감히 배치한 구도가 세련된 멋을 담고 있다.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게를 그린 김홍도의 그림에선 게가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이 밖에 말과 인물을 잘 그렸던 윤두서가 그린 말 탄 선비, ‘남나비’라고 불린 남계우의 나비 소품, 매화 사랑으로 알려진 조희룡의 홍매 사폭, 괴석에 난초를 그린 이하응의 석란도 등 대표적 기량을 보여주는 작품이 풍성하다.

추사, 다산의 글씨도 곁들여 문예적 분위기를 살려냈다. 양사언과 함께 조선시대 초서의 대가로 꼽혔던 황기로의 육필 시고는 최근 보물 1625-2호로 지정된 작품이다.

○ 부자유친-아버지와 아들

요즘 상업화랑에서 고미술 전시를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고서화가 절대적으로 적은 데다 진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일반 전시에 비해 몇 배의 품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시를 기획한 박우홍 대표(59)는 “내 힘으로 못 하는 전시다. 아버지께서 축적한 바탕이 있으니까 가능했지. 내겐 아버지에게 헌정하는 전시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1974년 동산방 화랑을 설립한 박주환 씨(82). 아버지가 1983년 조선시대 후기회화전을 열었으니 ‘옛 그림에의 향수’전은 그 속편일 터다. 아버지는 엉덩관절(고관절) 수술 후 걷는 게 불편하지만 요즘 날마다 화랑에 들러 아들의 전시에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우연히 마주친 기자의 이런저런 질문에 그는 “아들에게 물어보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지나는 말처럼 한마디 남겼다.

“고미술은 이론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단번에 배울 수 없다. 난 무섭게 야단치는 걸로 유명한 사람인데…. 이제 (아들이) 내 마음을 다 안다. 상당히 많이 배웠다.”

아버지와 아들의 내공이 합쳐진 덕분에 마음에 오래 머무는 전시가 탄생했다. 좀 힘들더라도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이런 전시가 이어져 옛 그림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되살아나는 것이 이들의 또 다른 바람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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