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그리면 자신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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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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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현역’ 백영수 화백
12년 만에 한국서 개인전

김환기 장욱진 유영국이 참여한 화가 모임 ‘신사실파’의 유일한 생존 작가 백영수 씨. 고미석 기자
김환기 장욱진 유영국이 참여한 화가 모임 ‘신사실파’의 유일한 생존 작가 백영수 씨. 고미석 기자
그림이 다정하고 따뜻하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모자(母子)와 초가집과 새, 나무와 달이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다. 널찍한 전시장 1, 2층 벽면을 채운 순박한 동화 같은 작품들. 단순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만남을 노래한다.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열리는 화가 백영수 씨(88)의 ‘PARIS 30년’전이다. 그는 40∼50년대 활동한 ‘신사실파’ 동인(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이규상 이중섭 백영수) 중 유일한 생존 화가. 이번 전시는 1977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정착한 뒤 유럽에서 전업화가로 뿌리를 내린 그가 12년 만에 한국에서 여는 개인전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화가는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다. “2005년부터 경기 의정부에 화실을 마련하고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체력이 좀 떨어져 1시간쯤 작업하면 쉬어야 한다.”

무던하고 내향적인 성격의 화가는 광복 이후 ‘백지 같은 사람’이란 평을 들으며 문화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나눈다. 50년대 초반의 전시 방명록을 보면 도상봉 최순우 김환기 김동리 신상옥 조지훈 장욱진 황순원 이중섭 등이 친필로 남긴 글과 그림이 수두룩하다.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가지만 그때 이야기만 나오면 그의 목소리엔 생기가 돈다.

“광복 이후 서양화는 인상파나 후기 인상파 화풍이 전부였다. 한국 미술도 그 영향을 받아 선이 굵고 넓게 칠했다. 그때는 이런 그림을 사실적 그림이라고 했는데 ‘신사실파’는 사실에 새로운 사실을 보탠다는 목표 아래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쟁 등 시대의 격동기를 거쳐온 노화가. 1989년 교통사고로 간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고 94년 위암 수술을 받는 등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온갖 시련에도 그의 그림은 온화하고 부드럽다. 가족의 삶,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적 작품은 치유와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그림을 20년 정도 그리면 더 어려워진다. 30년 넘게 그리면 자신이 없어진다.” 하면 할수록 그림이 어렵다고 말하는 화가. 아직도 바지 주머니에 몽당연필을 넣고 다니며 생각날 때마다 냅킨이든 영수증이든 스케치를 한다. 02-3210-0071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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