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休&宿<15>日 기타알프스 오쿠히다 온천향

  • 입력 2008년 2월 22일 02시 55분


《일본인에게 지진이 재앙이라면 온천은 선물이 아닐지.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누구든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하게 된다. 온천 없는 일본 여행을 생각할 수 없기에 그렇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남국의 섬에서 홀로 은신하다 발견된 한 일본인 패잔병. 수십 년 만에 귀국한 그의 첫마디는 ‘온천에 가고 싶다’였다. 온천이 일본인에게는 생활의 일부임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 온천은 일본 전국 어디서고 만난다.

그러나 음식과 사람이 다르듯 온천 역시 곳곳마다 다르다. 그래서 일본에서 온천여행은 그 끝이 없다. 한겨울이라면 설산고봉의 산중계곡이 좋다. 그래서 찾은 곳이 3000m급 고산(高山)이 포진한 기타(北)알프스 한가운데서 설산의 풍치를 고즈넉이 산중계곡에서 즐길 수 있는 오쿠히다(澳飛(탄,타)) 온천향(기후 현). 그곳의 다섯 온천 중에서도 깊은 산중의 명천(明泉) 신호다카 온천과 히라유 온천을 찾았다.》

오전 10시 30분 도야마 공항.

동해변의 도야마 현은 기타알프스 산악을 두른 멋진 곳이다. 그 산의 마루 금은 나가노와 기후, 두 현의 경계선. 기타알프스를 공유하는 이 세 현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엄청나게 내리는 눈이다. 그래서 겨울 눈 여행이라면 이 세 곳도 홋카이도 니가타에 이어 빠질 수 없는 곳이다.

버스가 도야마 시내를 벗어나자 산길이 펼쳐졌다. 도야마와 나고야(아이치 현)를 잇는 국도 41호선이다. 혼슈를 두 동강 내듯 기타알프스의 험준한 산악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이 산악도로. 그 중간이 기후 현 차지다. 지도상으로 봐도 기후 현은 일본열도의 중심이다.

이 산악의 험준함은 길을 달려봐야 안다. 한 시간 너머 달렸건만 여전히 산중 오르막에 터널의 연속이다. 국도 471호선 변 강가로 넓은 계곡이 펼쳐진다. ‘오쿠히다 온천향’을 알리는 아치도 보인다. 이곳은 도치오 마을로 오쿠히다의 다섯 온천 가운데 하나다. 다리를 건너 산길로 달리기를 다시 20여 분. 신호다카 온천의 신호다카로프웨이(케이블카)역에 도달했다. 이곳은 기타알프스를 찾은 관광객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참새방앗간 격의 관광지다. 로프웨이는 기타알프스 산악의 웅자를 보여줄 전망대로 여행자를 실어 나른다.

○ 알프스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기타알프스

로프웨이 역(신호다카 온천)의 해발고도는 1117m, 산정 역(니시호다카 입구)은 2156m. 4분 후 산중턱 나베다이라(1308m)에서 닿고 여기서 200m쯤 걸어 시라카바다이라 역으로 가서 또다시 로프웨이로 7분쯤 더 올라야 전망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날은 설산의 비경을 전망대에서 감상할 수 없었다. 전망대를 뒤덮은 눈구름 탓이었다. 그래도 아쉬움은 없다. 전망대 밖으로 펼쳐진 센코쿠 원시림의 설국비경을 볼 수 있어서다. 동화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다.

중간역인 시라카바다이라의 설경도 아름답다. 그 눈 속에서 특별한 것을 찾았다. 아시유(발만 담그는 야외온천탕)다. 눈밭 한가운데 아시유에서 바지자락을 걷어붙이고 두 발을 온천탕에 담근 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커플이 그리도 한가로워 보일 수 없다. 물론 무료다.

산중의 해는 짧다. 특히 한겨울이라면. 로프웨이를 등지고 계곡 아래로 1km쯤 떨어진 야마노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타알프스 산경을 객실 창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온천호텔이다. 창문을 여니 전망대에서 보지 못한 호다카다케(3190m) 연봉과 야리가다케(3180m)가 그림처럼 다가왔다.

○ 신호다카 온천의 풍치, 호텔 야마노

야마노 호텔은 콘크리트 빌딩이지만 시설(객실 식당)은 일식과 양식을 두루 갖췄다. 허다한 료칸 중에 야마노 호텔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로텐부로(풍치 좋은 노천온천탕)가 그 이유다. 이 호텔 것은 특별하다. 모두 5개가 있는데 저마다 그 풍정이 기막히다. 그중 호텔 바깥 계곡의 강가에 있는 ‘산쿄야리노유’를 찾았다. 오쿠히다에서 가장 크고 주변 경치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다.

탕은 정말로 넓었다. 그리고 탕 안에 몸을 담그니 계곡 한가운데로 야리가다케의 설산 풍경이 펼쳐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치탕은 처음이었다. 일본 어디서고 이렇게 멋진 계곡강가에서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 더는 없을 듯싶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탈의장은 남녀로 구별됐는데 탕은 하나뿐이다. 남녀혼탕이었다. 혼욕문화가 있는 일본이건만 이제 혼탕은 일본에도 흔치 않다. 그런데도 일본 남녀의 80%는 혼욕을 시도한다고 통계는 전한다. 여성도 이 로텐부로를 이용하느냐고 물었더니 안내직원 왈, “물론이지요.” 그리고는 살짝 귀띔한다. “가장 많은 때는 오후 4시와 5시 사이입니다.”

온천여행길에 꼭 알아두어야 할 지식 하나. ‘온천욕은 반드시 식전(食前)에 하라.’ 료칸은 대개 1박 2식 제공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아침과 저녁식사를 료칸에서 하게 되는데 저녁식사는 ‘가이세키(會席)’라 해서 푸짐하고 양도 많은 정식 차림으로 낸다. 가이세키는 술상과 밥상을 겸하므로 오사케(일본 술)나 비르(맥주를 뜻하는 일본어)를 반주 삼아 마시기에 그만이다. 이런 진수성찬의 맛을 제대로 즐기자면 왕성한 식욕이 기본이다. 그것을 돋우는 데 온천욕이 제격이라는 말이다.

가이세키 상차림은 현란할 정도다. 야마노 호텔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헤야쇼쿠, 즉 투숙한 객실에서 상을 받는다. 기모노 차림의 나카이 상(여관도우미)이 쉴 새 없이 주방에서 음식을 나른다. 그날 최고의 맛은 상 위에 놓인 개인 화로로 구운 히다규(飛(탄,타)牛) 스테이크였다.

히다규는 기후 현이 1981년 개발에 착수해 12년 만에 성공한 맛 좋은 쇠고기다. 마쓰자카규, 고베규와 더불어 일본3대 와규(和牛·일본쇠고기)에 드는 명품 쇠고기다. 히다규는 긴 사각형의 나무각재처럼 도톰하게 썰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또 하나 특미는 후박나무 잎을 그릇 삼아 된장을 화롯불에 구워 먹는 ‘호바(朴葉)미소’였다. 바다가 멀어 생선이 귀했던 이 지방에서 된장은 가장 보편적인 단백질 섭취원이다. 그래서 이런 요리가 나왔다.

○ 해발 650m 산중에 자리 잡은 ‘기후의 에도’ 다카야마 시

로텐부로의 따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근 채 들이켠 차가운 아침공기. 오쿠히다 온천여행의 둘째 날은 이렇게 시작됐다. 밤새 부슬부슬 내리던 눈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돼 세상은 온통 눈 속에 갇혔다. 오전 행선지는 다카야마 시내다. 해발 650m 기타알프스 산악 한가운데 깃든 기후 현의 중심 도시로 신호다카 온천에서는 한 시간 거리다. 현의 중심이라니 고층빌딩도 있을 법한데 거기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에도시대의 고색창연한 건물로 골목을 이룬 옛 거리가 여행자를 맞는다.

○ 스키와 온천을 동시에 즐기는 히라유 온천

히라유 온천 역시 산중 오지의 온천마을이다. 오쿠히다 온천향의 다섯 온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 스키장을 지나게 됐다. 오쿠히다는 눈이 많이 내리는 만큼 스키장도 예닐곱 곳 있는데 워낙 오지인지라 리조트는 없다. 그중 히라유 온천 스키장을 찾았다. 오두막 스타일의 스키하우스(2층)에 2인승 체어리프트 2기, 트레일도 3개뿐인 아담 사이즈다. 그러나 설질은 환상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키장의 베이스 고도가 해발 1300m(하이원스키장의 정상 높이)다. 리프트 정상은 해발 1800m 고지. 고도차가 500m면 아주 훌륭한 슬로프가 나온다. 아쉬운 점은 코스가 단 세 개뿐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온천여행 길에 가볍게 한나절 스키를 즐기려는 여행자에게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혹시 아이가 있는 여행자라면 더더욱 권한다. 썰매를 탈 수 있어서다. 너무도 한적해 스키어와 충돌 없이 얼마든지 썰매를 즐긴다.

히라유 온천 스키장에는 아주 특별한 시설이 있었다. 300m쯤 거리에 자리 잡은 일본 전통 스타일의 온천스파 시설 ‘히라유노모리’가 그것이다. 온천욕장에 설경을 감상하며 히다규 스테이크를 굽는 식당, 식후에 낮잠을 즐길 수 있는 휴게실(다다미 바닥), 특산품 매장까지 갖췄다. 특히 대욕장의 로텐부로는 경치와 시설이 기막혔다. 탕이 일곱 개나 될 만큼 넓고 다양했으며 기타알프스 산악풍경도 감상할 수 있었다.

오쿠히다 온천향(일본 기후 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산중의 도시 다카야마

고색창연한 건물…에도시대 거리 걷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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