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com]프로야구 롯데 상승 이끄는 로이스터 감독

  • 입력 2008년 4월 18일 03시 29분


《특급 신인이 입단한 것도 아니다. 고액 연봉의 외국인 선수를 스카우트한 것도 아니다.

선수들은 그대로다. 하지만 팀 색깔은 완전히 바뀌었다. 기회를 잡으면 대량 득점을해서 상대팀의 기세를 꺾어 놓는다. 초반에 먼저 점수를 내줘도 경기를 뒤집는다.

지난해 7위였던 팀이 올해는 선두경쟁을 하고 있다. 프로야구 2008년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 얘기다. 돌풍의 중심에 프로야구 첫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56)가 있다. 경기 수훈 선수로 선정돼 인터뷰를 하는 선수들은 “감독님 주문대로 했다” “감독님 말씀대로 했다”며 공을 오로지 감독한테 돌린다. 》

경기직전 선수들에게 모자 벗어 인사

최근 몇 년간 꼴찌를 밥 먹듯이 해서 ‘꼴데’라는 별명이 붙은 롯데. 올해 연승 행진을 하자 부산에서는 ‘로이스터 신드롬’이 불고 있다.

부산 사직야구장에 모인 3만 관중은 감독이 소개되자 기립 박수를 보낸다. 사직야구장 기념품 매장에서 파는 그의 사인이 들어간 4만8000원짜리 바람막이 잠바는 3일 만에 1000장이 모두 팔렸다.

○ 번트 생각말고 타점 올려 연봉 더 받으라고 하죠

롯데 팬들은 그에게 ‘제일호’란 한국 이름도 붙여줬다. 한국 프로야구 1호 외국인 감독으로서 ‘넘버 원’ 감독이 되라는 팬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로이스터 감독을 13일 부산 사직야구장 더그아웃에서 만났다.

공동 선두였던 롯데는 전날 경기에서 기아 타이거즈에 역전승을 거둬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롯데가 지난해와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어떻게 팀을 바꾸어 놓았나.

“경기에 임하는 태도를 바꾸라고 했다. 선수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하라고 했다. 번트 댈 생각하지 말고 타점을 올려서 연봉을 더 받으라고 선수들에게 이야기한다. 내가 주문하는 것을 선수들이 잘 받아들이고 있다.”

―선수들이 감독 지시를 잘 따르는 이유는….

“선수들은 능력이 없어서 못한 게 아니고 지금까지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 부분을 지적하니까 선수들이 수긍을 한다. 내가 선수생활을 하면서, 코치와 감독으로서 최고의 선수들과 시간을 보낸 점을 선수들이 인정해주는 것 같다.”

그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LA다저스와 뉴욕 양키스 등 5개 팀에서 16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2002년에는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 감독도 맡았다.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집중(Focus)이다. 9이닝 동안 집중하라고 한다. 그 다음이 우리는 한 팀이라는 것이다.”

―리더십의 비결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을 프로로서 존중하는 것이다. 한국은 프로야구팀이 8개밖에 없는데 그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선수라는 의미다. 특별한 만큼 선수들을 존중하려고 한다.”

그는 경기 시작 전 선수들에게 “오늘도 열심히 하자”며 모자를 벗어 인사한다. 선수들에게 보내는 존중의 표시다.

○ 강민호 선수, 감독 어깨에 손 올리고 “굿모닝”

강민호 선수는 “‘감독님이 진심으로 선수들을 대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동을 받게 돼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선수들에게 여간해서는 나무라지 않는다. 경기에 집중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지적을 하지만 실책을 하거나 병살타를 쳤다고 질책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병살타를 치거나 삼진을 당해도 고개 숙이지 말고 당당하게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라고 주문한다.

―운동선수들은 대체로 감독을 어려워한다. 감독한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선수들이 있나.

“(1군에 등록된) 26명 모두가 그렇다. 그들은 나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한국 운동선수들의 문화를 생각할 때 잘 믿어지지 않는다.

“그게 지난해와 가장 큰 차이다.”

선수들이 로이스터 감독을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로 5년차인 강민호 선수는 인터뷰 중인 로이스터 감독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굿모닝”이라고 인사를 했다. 4번 타자 이대호 선수는 이날 처음 선보인 ‘선데이 캡(롯데 선수들이 일요일에만 쓰는 모자)’을 쓰고 있는 로이스터 감독을 보고는 “멋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박현승 선수는 “내국인 감독보다 훨씬 대하기 편하다. 내국인 감독들은 대하기가 어렵지만 로이스터 감독에게는 그런 장막이 없다”고 말했다.

―감독으로 온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수들과 친해질 수 있었나.

“내가 먼저 선수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선수 이름을 모두 외웠고 지금은 선수 가족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

그는 8년 만에 친정 팀으로 복귀한 마해영 선수의 예를 들었다. 마해영 선수는 성적 부진으로 LG에서 방출된 뒤 유니폼을 벗을 위기에 처했지만 로이스터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테스트를 받고 선수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다.

“나는 ‘마’(그는 마해영 선수를 ‘마’라고 부른다)에게 ‘당신이 잘하는 것은 팀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말해줬다.”

○ 처음 한국 올 때 불안… 지금은 더 바랄 게 없어

마해영 선수는 “국내 지도자들은 내가 나이가 들어서 더 뛸 수 없다고 보는데 로이스터 감독은 내 존재의 이유를 인정해 줬다. 열심히 해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 관중 앞에서 ‘부산 갈매기’를 부르겠다고 했는데….

“아직 연습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많이 남아 있다. 경기장에서 관중이 부르는 노래를 자주 듣지만 그것만으로는 따라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 생활은 어떤가.

“일본 지바 롯데의 보비 발렌타인 감독과 신동빈 부회장 때문에 한국에 왔다. 처음에 올 때는 불안감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훌륭한 경험(wonderful experience)을 하고 있다.”

그는 선수 시절부터 절친했던 발렌타인 감독이 신 부회장에게 추천해 그 전에 한 번도 와 본 적 없었던 한국에서 감독 생활을 하게 됐다.

―한국에서 가본 곳 중 어디가 가장 좋은가.

“부산이 가장 좋다. 아름다운 도시다. 사람들도 친절하다.”

로이스터 감독은 사직야구장 인근의 32평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한다. 부인과는 이혼했고 미국에 있는 두 딸 캐시(24), 캐라(14)와 인터넷으로 화상 통화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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