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30분 안에 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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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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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 ― 이인경 그림 제공 포털아트
꽃들에게 희망을 ― 이인경 그림 제공 포털아트
한껏 속력을 높여 질주하던 최 씨의 피자 배달 오토바이는 전철역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렸습니다. 30분 안에 피자를 배달하지 못하면 피자값의 전액 또는 일부를 받지 않는 ‘30분 배달제’ 때문에 신호를 기다리는 마음은 촌각을 다투었습니다. 카운트다운을 하던 그의 오토바이는 녹색등이 켜지자마자 튀어나가듯 발진했습니다. 순간 도로를 주행하던 택시가 주황등에서 빨간등으로 바뀌기 전에 사거리를 건너기 위해 총알처럼 달려왔습니다. 피자 배달 오토바이와 택시가 충돌하고 최 씨의 몸은 허망할 정도로 가볍게 공중으로 날아올랐습니다. 그 사고로 최 씨는 9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끝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스물 넷,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최 씨의 배달 아르바이트 시급은 4500원이었습니다. ‘30분 책임제’로 배달 때마다 건당 400원을 추가로 받던 그는 결국 예정된 불행의 덫에 걸려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30분 책임배달과 400원, 그리고 목숨 사이에 어떻게 상관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주문받은 피자를 만들고 그것을 포장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14∼15분이라는 걸 감안하면 나머지 시간 안에 피자를 배달한다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목숨도 불사하라는 말과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토록 끔찍한 무한경쟁의 용광로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무표정하게 폐기 처분하고 있습니다.

30분 내에 배달하지 못하면 매장 평가에 페널티를 부여받기도 하고 배달원이 손실액을 물어내기도 합니다. 시급 4500원에 건당 400원을 받고 배달을 하면서 범칙금까지 내야 한다면 교통법규 준수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기록경기를 하듯 배달을 갔을 때 문 앞에 서서 시계를 들고 시간을 재는 주문자도 있다고 합니다. 느긋하게 구워야 할 피자를 한껏 빨리 굽고, 안전하게 배달해야 할 피자가 레이싱 하듯 배달되는 걸 알면서도 그걸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피자를 주문할 때마다 “30분 안에 오지 마세요”라는 말을 반드시 덧붙인다고 합니다. 그렇게 빨리 만들고 그렇게 빨리 배달하고 그렇게 빨리 먹어치워서 좋을 게 뭐가 있냐는 반문입니다.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패스트푸드보다 슬로푸드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승용차를 타는 것보다 자전거나 걷기로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업도 촌각을 다투는 유행 패턴을 추구하기보다 오래 가고 싫증나지 않는 슬로트렌드를 개발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젊은 날 명성을 얻거나 부를 축적해 이른 나이에 성취감을 만끽한 사람들의 수명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짧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무한 속도경쟁, 그것은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오직 결말을 재촉하는 경쟁일 뿐입니다.

추운 겨울 날, 달팽이가 버찌를 먹으려고 얼어붙은 벚나무 줄기를 한없이 느리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줄기의 틈바구니에 웅크리고 있던 딱정벌레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습니다. “이 바보야, 그렇게 기를 쓰고 올라가봤자 아직 버찌는 없어. 알기나 해?” 그러자 달팽이는 태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괜찮아. 내가 저 위에 닿을 때쯤엔 열려 있을 거야.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는걸.”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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